서울시내 회사택시 기사의 평균 월급은 125만원이다. 평안운수에 다니는 도상호씨(52)는 동료 기사의 배가 넘는 300만원 이상을 번다. 한때 콘크리트 회사에서 영업담당 상무이사로 활동했던 도씨는 택시를 몬 지 1년4개월 만에 자신감을 얻었다. 사양길에 들어선 택시산업이지만 기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밤 근무만 합니다. 요즘 택시가 남아돌아서 주야로 교대근무를 할 필요가 없거든요." 밤에 일하면 낮에 차를 몰 때보다 대체로 2만~3만원은 더 벌 수 있다. 회사 생활을 통해 얻은 화술과 친절함으로 그새 많은 단골을 두었다. 장거리를 가려는 고객들이 한 달에 두세 번은 전화를 해온다. 얼마 전 경북 경산을 다녀오면서 하루에 3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물론 이 것만으로 300만원을 채울 수 없다. 월 기본급 92만원에 하루 6만원씩 26일을 일해 봐야 248만원을 벌 뿐이다.

도씨는 수입을 더 올리기 위해 휴일을 '반납'했다. "사납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요일에 일하면 15만원이 고스란히 내 손에 떨어집니다. 2004년 12월29일 처음 택시운전대를 잡은 뒤로 아버지 제삿날 딱 하루 쉬었을 뿐입니다."

그는 택시기사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투잡스족'이다. 낮에는 다단계 판매회사인 '하이리빙'에서 20명의 소비자를 상대하면서 3명의 하위 관리자를 감독한다. 수퍼바이저로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의 소득을 추가로 올린다. 이러다보니 하루 수면시간은 5시간에 불과하다.

"6년 전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증권맨의 말에 혹해서 주식에 투자했는데 10억원도 넘게 손해를 봤어요. 20년 넘게 회사 생활하면서 모은 돈과 퇴직금을 고스란히 날렸지요."

그는 상계동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팔아 빚의 대부분을 갚았다. 남은 빚은 3000만원가량된다. 이처럼 악착같이 돈을 버는 것은 채무를 제대로 갚지 못할 경우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조비 2만원이 아까워 택시노조에서 탈퇴했을 정도다.

현재 그는 서울 상계동에서 보증금 500만원,월세 40만원의 17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큰 돈을 잃고 난 뒤 며칠 동안 잠이 안오더군요. 빈털털이가 되고나니 체력이 강해야 재기할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와 중랑천 뚝방길을 걸었죠. 그때 운동이 제대로 됐는지 체력은 아직 걱정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보루처럼 쥐고 있는 '보물'이 있다. 16년 전에 사놓은 개포동 13평짜리 아파트가 그 주인공. 지금 팔아도 6억원 이상은 받지만 언젠가 재건축이 되면 시세 차익을 더 거둘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도씨도 한때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영업상무로 잘 나갈 때는 한 달에 수천만원도 벌었습니다. '바지사장'이 될 것 같아 고사를 했지만 회사를 맡아달라던 오너의 제의도 있었죠."

도씨는 얼마 전 자신의 증권계좌를 '깡통'으로 만든 직원의 동료를 손님으로 태웠다. "그 사람 때문에 택시 운전한다고 원망하지 않을테니 착하게 잘 살라는 말만 전해달라고 했죠."

중년의 실패에서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족도 큰 도움이 됐다. 아들은 공군사관학교 4학년생. 한때 "아버지가 번 돈이라고 아버지 마음대로 날려도 되냐"며 원망했던 아들은 요즘 들어 "아버지는 잠을 언제 주무시냐"고 걱정을 한단다. 전문대를 나온 딸도 취직했다. 아내는 자신과 함께 다단계판매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3년은 더 치열하게 살 것이라고 했다. 개인택시 자격도 얻을 수 있는 데다 그때까지는 쉬지 않고 일해도 건강에 무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돈 많이 버는 택시기사의 노하우요? 그런 것은 없어요. 승차거부 안하고 손님 목적지까지 성실히 모시자는 생각으로 운전하는 게 전부인데도 신기하게 손님이 끊이지 않네요."

박종서·이태훈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