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의료봉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데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현지인 아주머니가 머리를 두 손으로 받치고 한 걸음 걷는 데 10초 정도의 속도로 진료 현장에 나타났다.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아파서 빨리 걸을 수 없다고 한다.

당뇨와 혈압이 위험 수준으로 높은 상태여서 통증클리닉과 내과 선생님들이 모여 임시 회의를 한 후 그 자리에선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서 한의사인 내게 방법이 있는지 물어왔다.

일단 진맥을 하고 침을 놓은 후 5분 정도 지나자 고개를 전후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더불어 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필자에겐 당연한 결과지만 현지인들에겐 작은 기적이 나타난 것이었다.

구경꾼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날 진료소로 가는 길에 웬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필자는 통상적으로 의료봉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진료과목이 통증클리닉이므로 아마도 통증클리닉 진료를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려니 하고 "고생 좀 하시겠네요"라며 농담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필자의 책상 앞으로 이어진 줄이었다.

맨 앞에는 어제의 그 아주머니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열심히 떠들며 고개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분이 자기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마을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온 것이다.

요즘 인터넷의 한 귀퉁이가 뜨겁다.

한의사와 의사가 서로를 비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다.

결국 의료시장의 소비자인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다.

서로가 다른 기준을 갖고 다른 관점에서 다른 언어로 싸워봤자 목소리만 커질 뿐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의 존재를 완전하지 못한 자신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한의학이 과학이냐,비 과학이냐의 논쟁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인 논쟁이다.

저 혼자 잘났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을 누가 신뢰하고 존경하겠는가.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자신의 장점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명색이 의료인이라면 대의(大醫)가 되진 못할망정 국가와 사회에 걱정거리를 만들어 고질병의 원인이 될 순 없지 않은가.

안보국 < 국보한의원 원장 · www.kookb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