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남대문로 4가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빌딩 4층.3월22일 출범한 '삼성법률봉사단' 사무국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삼성 소속 변호사들이 앉아있는 4개의 상담실은 비어있을 틈이 없다.

개인별 상담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지만 방 입구에는 항상 서너 명의 손님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단하고 가난한 일상에 찌든 서민들이지만 갖가지 억울한 사연을 설명하는 순간만은 삼성의 특급 율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이날 사무국에서 상담일정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한 서우정 봉사단장(부사장)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64명의 삼성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상담에 임하고 있었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인 장애인이 오토바이 운전중 사고를 냈답니다.

그런데 피해를 보상해줄 돈이 없어 기소가 됐어요.

지방에 사는 또 다른 사람은 경미한 범죄로 인해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는데 직업이 경비원이에요.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려면 직업을 포기해야 한대요.

참 다들 딱한 사연들이더군요.

이 분들은 우리가 무료변론을 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라면서 부사장은 눈물나는 서민들의 애환과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접할 때면 검사복을 벗고 삼성에 입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봉사단 운영 실적은.

"지금까지 770건을 상담해 18건에 대해 무료변론을 결정했다.

대략 하루에 35건 정도 상담한다.

상담 요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 약간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우편으로도 상담할 수 있나.

"우편은 물론 전화 팩스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

요즘은 구치소에서 무료 변론을 해달라는 편지가 많이 온다.

그 사람들에게 공소장을 보내라고 하면 서류를 준비하는데 애를 먹을 수 있어 가능한 한 변호사들을 구치소에 보내 직접 들어보도록 하고 있다."

-상담시간과 방식은.

"상담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풀가동한다.

사연을 충분히 듣기 위해 1시간 정도씩 한다.

변호사 한 명당 8∼9명 정도의 상담객이 배정된다.

일단 상반기까지의 운영결과를 분석해 보완할 점을 찾아낼 생각이다."

-변호사들의 반응은 어떤가.

귀찮아하지는 않는가.

"모두 즐겁게 일하고 있다.

삼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2·7 사회공헌계획'을 발표했다.

그 때 삼성의 변호사들은 그 취지에 맞춰 뭘 할 수 있느냐를 고심한 끝에 법률봉사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구조조정본부에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겨 전폭적으로 지원해서 발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변호사인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특히 삼성 변호사들은 봉사단이 발족되기 이전에도 변호사협회 등이 주관하는 봉사 프로그램에 개별적으로 많이 참여해 왔다."

-무료 상담이라고 하는데 상담자들은 어떤 비용도 부담하지 않나.

"봉사단의 활동은 크게 법률상담과 형사변론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상담과 관련해서는 어떤 비용도 들지 않는다.

형사변론의 경우도 원칙적으로 무료다.

다만 보석보증금만은 본인들이 부담해야 한다."

-다른 무료법률 서비스와 차별점은.

"일각에서는 '법률구조공단이나 대한변협의 무료변론 등이 있는데 뭣하러 중복되는 일을 하느냐'는 지적도 한다.

물론 그 기관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

그렇지만 봉사활동은 많은 사람들이 할수록 좋지 않은가.

앞으로도 보다 많은 뜻있는 분들이 이런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무전유죄-유전무죄'로 대변되는 법률서비스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특히 그래야 한다."

-무료변론이 삼성 변호사들의 주전공은 아닐텐데.

"상담신청에는 형사사건도 있고 민사사건도 있다.

민사는 임대차,채권·채무 등이 대부분인데 이런 문제는 변호사들의 기본적인 업무에 속하는 내용이다."

-봉사단은 항구 조직인가.

"그렇다.

조직을 확대하는 문제는 그룹측과 협의를 할 것이다."

-상담을 거치지 않는 기획 변론도 할 생각인가.

"원칙적으로 할 생각이다.

봉사단의 발족 취지에 비춰볼 때 인권옹호와 서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꼭 무료변론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면 찾아갈 생각이다."

-법률봉사단장직을 수행하면서 본연의 업무도 할 텐데 요즘 어떤 일을 하나.

"주로 계열사들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검토를 해준다.

어떤 일이 공시대상이냐 아니냐,이사회를 거쳐야 하느냐 아니면 주주총회 사안이냐 등과 같은 회사법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기업 법무팀에는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도 법무팀에 대해 친근감을 갖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평소 봉사활동을 하는 편인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매달 얼마씩 지원하고 있다.

성당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다."

-법률봉사단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봉사단 발대식에서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을 인용해 말한 게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살아라'라는 말을 인용해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전문성을 키워서 내일 죽을 것처럼 봉사하자'고 당부했다.

바로 그것이다."

글=조일훈 이태명·사진=김영우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