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한번 살펴보자'는 수준에서 '없애는 게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공식 입장은 여전히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관련부처 내부에서는 폐지시점을 결정하는 것만 남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서도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출총제와 관련된 3개 부처가 모두 '폐지'에는 원론적으로 공감한 것으로 전해져 공정위 주도로 '시장경제 선진화 태스크포스'가 꾸려지는 올 하반기부터 '폐지시점'을 둘러싼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출총제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통제하겠다는 취지로 1987년4월 도입됐다가 외환위기로 인해 국내 알짜기업들의 경영권이 흔들리자 1998년 2월 폐지됐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순환출자가 다시 늘어났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2001년 4월 부활됐다.

출총제 적용 기준은 자산 6조원 이상 기업집단으로 이들 집단에 소속된 계열기업은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총액이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된다.

참여정부는 2003년 대기업 정책과 관련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마련하면서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부터 출총제 존폐여부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당에서도 '체감경기를 살리기 위해 출총제를 포기해야 한다'(신학용 열린우리당 의원)는 취지의 발언들이 나오면서 폐지 관련 논의가 일정보다 빨리 도마 위에 올랐다.

정세균 산자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도 폐지 필요성에 동조했다.

민간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출총제를 유지할 명분이 이젠 약해졌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지배구조 모범기업으로 꼽히던 KT&G마저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되면서 경영권 방어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현실화했고 투자와 고용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이 '대규모 회사의 주식 보유총액 제한제도'를 2002년 11월 폐지하면서 대기업의 출자를 제한하는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도 출총제 유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출총제의 당초 목표인 경제력 집중방지 및 가공자본 형성 차단,지배구조 개선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 만큼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폐지 시점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재경부는 '내년 중 폐지'에 무게를 두고 있고 산자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며 한 발 빼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출총제를 폐지하더라도 법 개정작업에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할 때 일러야 2008년부터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