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기업구조조정 작업시스템이 상당히 취약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위아가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통해 우회적으로 부채를 탕감받은 의혹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지만,다른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빌미삼아 빚을 줄이는 등 당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위아 등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부실기업이 제3자를 내세워 부채를 줄이는 수법은 태창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11월 퇴출 위기에 직면했던 태창은 자기 회사의 대출채권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회수해 100억원이 넘는 부채를 털어버렸다.

당시 제일은행과 동화은행은 태창의 자본이 전액잠식돼 대출금 146억원을 회수하기 어렵게 되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대출채권을 팔았다.

캠코는 이를 공개매각에 부쳤으며,태창은 3%의 수수료 지급을 미끼로 A사를 내세워 입찰에 참가했다.

결국 대출채권을 43억원에 회수하는 데 성공,103억원의 부채를 탕감받았다.

캠코의 한 퇴직 임원은 16일 기자와 만나 "현대차가 옛 기아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편법을 쓴 것을 당시에는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위아 채권은 산업은행의 입찰을 거쳐 신클레어(CRC)에서 위아로 차례로 넘어갔고 캠코도 이 입찰에 참여했음에도 불구,위아 채권의 주인이 위아가 될 줄은 결코 알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채권입찰을 하는데 돈에 꼬리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캠코의 공적자금 사후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진술이 아닐수 없다.

그렇지만 태창과 위아 등은 아예 사주(社主)가 노골적으로 나선 사례에 비하면 약과에 속한다.

또 다른 캠코 관계자는 "일부 회사는 옛 사주가 가져간 경우가 있는 데 내가 알고 있는 사례만 해도 S사와 T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S사의 경우 법원에서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계약취소까지 검토했지만 불발에 그쳤다"며 "T사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에서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는 부도로 망가졌는 데도 부실기업 오너가 회사 부채를 탕감받고 다시 오너가 된 셈이다.

또 다른 법정관리 기업 S사 역시 사주의 인수 의지가 강력했지만 운좋게도 D사를 대주주로 맞아 재기하기도 했다.

캠코 등에 따르면 비상장회사의 경우는 편법적인 구조조정이 훨씬 수월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부실화된 비상장사들 중 일부는 세금을 낼 현금이 없어 자사 주식을 대신 냈다.

캠코는 대납된 주식을 입찰에 부쳤고 당초보다 싼 값에 이 주식은 원 소유기업에 되돌아가는 방식이 활용됐다는 것. 캠코 관계자는 "경영권이 달려 있지 않은 비상장 주식을 누가 사려고 했겠느냐"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물론 현재의 잣대로 과거 상황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있다.

캠코와 산은측은 "외환위기 직후에는 CRC를 통한 부실채무 떨어내기가 각광받는 첨단금융상품 중 하나였다"며 "특히 산은이 위아채권 997억원을 795억원에 매각해 거둔 약 80%의 부실채권 회수율은 당시 상황을 감안했을 때 엄청나게 높은 비율"이라고 주장했다.

김병일·김용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