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정치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 중 아들 한 명과 딸 셋 모두를 군 복무시켰고,친척들이 자녀들을 캐나다로 피신시키려 하자 이들과 인연을 끊겠다며 만류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들은 특사로,둘째 딸은 얄타회담의 비서로 활용했다.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의 본(本)을 보인 셈이다.

장애인이었던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용기와 인내심,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통찰력,사람들의 마음속에 결단력을 심어놓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자신 말이 많고,결단이 느리고,청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등의 단점이 있었지만 미국 역사상 그 만큼 매사를 솜씨있게 처리한 정치가는 없었다고 한다.

처칠이나 루스벨트뿐만이 아니다.

비행기 사고로 숨진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전 대통령이나,싱가포르를 일등국가로 만들어 놓은 리콴유 전 총리도 정치인들에게는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 집착해 온갖 추악한 행태를 보이고,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정치꾼'과는 구별된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폭로'야말로 정치꾼들의 전매특허가 아닌가 싶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로정치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정책경쟁이나 정책개발은 뒷전이고,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겠다는 '선거혁명'은 구호뿐이다.

정치꾼들의 마구잡이 폭로는 '이놈 저놈 다 똑같다'는 '도매금의 정치학'을 확산시켜 정치무관심을 심화시킬 따름이다.

지방선거를 40여일 남겨놓고,정당간 혹은 후보자간 어떤 폭로와 비방이 이어질지 걱정이다.

우리나라 선거 역사 60년을 돌아볼 때,폭로라는 잘못된 관행이 수없이 반복돼 왔는데도 아직도 폭로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구 시대의 악습을 버리고,정치인의 금도(襟度)를 실천하는 새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기다려진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