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9일 사상 첫 여성총리가 탄생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성의 정계 최상부 진출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부형태에 따라 총리가 명실상부한 국가원수인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나, 대통령제 국가에서나 모두 여성의 정치적 활약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영국 최초이자 유럽 최초 여성총리로 스타트를 끊었다.

옥스퍼드대 출신인 대처는 11년간 재임하면서 고실업률을 낳던 영국병을 치유하고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 1년 이상 끌던 탄광파업을 해결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11월 독일에서 2차대전 이후 최초의 여성 총리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52)은 동독에서 자란 물리학 박사출신으로 정치입문 15년만에 총리가 돼 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됐다.

개신교도이자 여성이면서도 가톨릭계 남성이 득세하던 기민-기사당 연합에서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사당 당수를 누르고 총리 후보가 될 때부터 파란이었고, 총선 후대연정의 수뇌부 회동에서 현직이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제치고 총리로 추대됐다.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지원으로 성장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연방하원의원,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 기민당 최초 여성당수 등을 지내면서 자생력을 키웠다는 평가다.

대통령제인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정부 하에서 1991∼1992년 에디트 크레송이 최초로 여성총리를 지냈고, 포르투갈에서는 좌파정치인이던 마리아 데 루르데스 핀타실고가 1979년 5개월간 대통령을 지내고 1986년 여성 최초로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여성 바람이 유달리 강하다.

노르웨이에서는 내과의사 출신인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가 1981년 역대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후 3차례나 총리를 맡으면서 노르웨이 정계에서 여성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기틀을 다졌다.

그는 퇴임 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내며 국제 기구 내에서도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도 1990년 인권변호사 출신의 메리 로빈슨이 마흔여섯 나이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고 연임을 포기한 후에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으로 활약했다.

아일랜드의 현직 대통령 메리 맥컬리스도 여성이며, 버티 어헌 총리도 여성이다.

핀란드에서는 2000년에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이 된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이 올해초 2기 집권에 성공했다.

영연방국가인 뉴질랜드에서는 1997년 제니 시플리가 국민당 총재에 이어 총리가 됐고 그 뒤를 이른 헬렌 클라크 현총리는 1999년 11월부터 지금까지 3번째 연임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대법원장, 국회의장, 영연방국가에 있는 총독 등 현재 4대 요직이 모두 여성이다.

여성 정치인의 활약은 제3세계에서도 가시화하고 있다.

아프리카 라이베이라에서 올해 초 엘렌 존슨-설리프가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고, 칠레에서는 국방장관과 보건장관을 지낸 좌파연합의 미첼 바첼렛이 올해 초 첫 여성대통령이 됐다.

카리브해 섬나라인 자메이카에도 이달초 집권 인민국가당(PNP)의 당총재인 포르티아 루크레이타 심슨 밀러가 자메이카 독립 후 제7대 총리로 취임했다.

라트비아에서는 1999년 바이라 비케 프레이베르가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동유럽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가 됐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빅토르 유셴코와 손잡고 오렌지 혁명을 이끈 율리아 티모셴코가 지난해 6개월간 총리를 지냈다.

아시아권의 여성 지도자들은 가문이나 남편의 후광으로 집권한 경우가 많았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인도 정계를 좌우해왔던 네루-간디 집안의 일원인 인디라 간디가 대표적이다.

인도 초대총리인 네루의 무남독녀로 간디가의 며느리가 된 인디라 간디는 1966년부터 중간 공백기를 거쳐 장기간 총리에 집권했으나 84년 시크교도의 손에 암살당했다.

1986년 집권한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이던 남편이 마르코스에 의해 투옥되고 1983년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되자 대신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글로리아 아로요 현 필리핀 대통령은 1961∼1965년 대통령이었던 디오스다도 마카파칼 전대통령이 딸이다.

스리랑카 전총리의 딸인 찬드리카 쿠마라퉁가는 94년부터 지난해까지 스리랑카 대통령을 지냈고 친어머니를 총리로 임명했다.

군부 쿠데타로 처형된 피카르 알리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딸인 베나지르 부토도 1988∼1991년 파키스탄 총리를 지냈다.

세계각국에서 여성의 정계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지구촌 평균으로 보면 아직은 여성 정치인의 활약은 미흡한 편이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의회연맹(IPU)의 올해 초 발표자료에 따르면 여성 정치인들의 비율은 2003년 말 사상 처음으로 15%선을 돌파한데 이어 2005년말 현재는 16.3%(하원 기준)다.

여성의원 비율이 30%를 넘는 국가는 조사 대상 187개국 가운데 모두 18개국이며 세계평균인 16.3%를 넘는 국가만도 62개국에 달한다.

여성의원 비율은 르완다가 48.4%로 가장 높고 스웨덴(45.3%), 노르웨이(37.9%), 핀란드(37.5%), 덴마크(36.9%), 네덜란드(36.7%), 스페인(36.0%), 코스타리카(35.1%) , 모잠비크(34.8%), 벨기에(34.7%) 등이 상위 10개국에 포함돼 있다.

한국은 13.4%로 187개국 가운데 73위. 세계 평균은 물론 아시아 평균 15.8%를 밑돌고 있다.

북한은 20.1%로 48위, 중국은 20.3%로 47위에 오른 반면 일본은 9.0%로 102위에 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chae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