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 서울대 교수.경제학 >

지난 7일 공적자금위원회는 매각대상 구조조정기업의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에 대한 평가 항목을 명문화했다.

가격요소와 비가격요소의 비중을 각각 67~75%와 25~33%로 책정하고 비가격요소에 자금조달능력과 매각성사 가능성 등을 반영토록 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노사관계 안정 가능성과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여부가 주요 평가요소로 포함된 것은 정말 뜻밖이다.

안정적 노사관계와 이해관계자들의 동의가 중요한 것은 틀림없고 공적자금위원회도 이 점을 중시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조용히 있는 노조와 이해관계자들을 도리어 들쑤시는 결과로 될 것이다.

구조조정 대상기업들이 대체 어떤 기업들인가? 그대로 두었으면 청산되고 말았을 기업들이다.

청산되었다면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채권자들 또한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나라경제가 IMF의 구제금융까지 받도록 만들었던 지난 세기말의 대환란은 우리 기업들을 무더기로 파산 위기까지 내몰았다.

이들이 모두 청산될 경우 국가경제적 폐해가 너무 컸을 것이기에 정부는 존속가치가 높은 재생 가능한 기업들을 선별해 공적 자금까지 투입하면서 채무조정을 위시한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그 여파로 국가부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구조조정이 잘 됐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업의 수익규모는 축소 조정된 채무 정도나 감당할 수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조정 후 기업가치는 원래의 채무 규모에 턱없이 미달하기 일쑤다.

이 상태에서 해당기업을 매각하면 투입한 공적 자금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체제는 정상적 기업운영체제가 아니다.

청산가치와 존속가치를 평가 비교하고 존속가치가 큰 기업들의 채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 조정하는 구조조정 전문가는 기업의 경영전문가와는 다르다.

따라서 조정이 끝나면 하루빨리 마땅한 사업자를 물색해 해당 기업들을 매각해야 한다.

공적 자금의 손실이 불가피한 만큼 매각 원칙은 최대한 높은 값을 받고 파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이 제대로 영업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도록 하면서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해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난 국가부채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공적자금위원회의 결정은 이 원칙을 크게 벗어났다.

이 결정에 고무된 노조는 인수희망기업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고 협상하려 할 것이다.

요구를 거부하는 사업자에 대해 노조가 공개적으로 다각적 공세를 펼친다면 이 사업자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될까?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업자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

이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인수비용이 그만큼 높아진다.

결국 노조나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사업자들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참여하는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입찰가를 그만큼 낮게 써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인수하겠다고 나선 노조라면 다른 사업자의 인수는 모조리 반대할 것이다.

이들이 모든 인수희망자를 상대로 무리한 요구를 제시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매각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공적자금위원회가 노조나 이해관계자들이 매각과정에서 묵묵히 관찰하기만 할 것으로 보았을 리는 없다.

결국 정부는 인수기업이 노조와 이해관계자들에게 대폭 양보하도록 종용한 셈이다.

한푼의 공적자금 환수가 아쉬운 상황에서 노조와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낮은 매각대금도 감수하겠다는 뜻인가?

어떠한 경우라도 노조나 시민단체와의 관계는 기업에 일임하는 것이 좋다.

정부는 누구를 편들기 보다는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법적 처리만 엄격하게 하면 된다.

구조조정 대상기업 매각업무가 노조와 시민단체의 편들어주는 일에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