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 KDI 연구위원 >

정부가 의료부문을 개혁한다고 한다.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을 뜯어보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공공의료의 공급수준을 3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기존 공공병원의 시설확대와 신규기관의 확충을 위해 2009년까지 4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계획돼 있다.

그런데 공공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가 공공의료인가? 서울대학병원이 세브란스병원보다 더 공공적이라는 데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공적 의료는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서비스의 성격이다.

민간의료기관이 제공하기 어려운 서비스 중 필수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부분이다.

공공의료기관을 짓는다고 공공성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민간이 담당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되는 것의 상당부분은 민간이 역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분야일 뿐이다.

예를 들어 권역별 재활센터를 짓는다고 하지만, 재활부문의 발전이 미진한 가장 큰 이유는 재활관련 의료수가가 현실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동기로만 움직인다고 욕먹는 미국의 의료체계에서도 탁월한 민간 재활기관들이 흔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민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많지 않다.

게다가 그간 지방공사의료원이 환자들에게 외면받아온 것은 규모와 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라,무리하게 수익성을 강요하는 정부의 평가방식으로 공공성과 경쟁력의 확보에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잘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어떤 지표를 가지고 평가할 것인지 정부 스스로 명확해져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잘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는 더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말자. 그게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재정사업의 기본이다.

이제껏 잘한 적이 없는데, 이제부터 갑자기 잘할테니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보장성의 확대 역시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70%로의 목표나, 향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의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기준을 차용하고 있는 선진국들과 정확한 비교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수치적 목표를 급조하고 이에 매진하는 것은 미욱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험료나 세금을 더 내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와 유사하게 사회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공적의료보험료는 14%에 달하는데 반해 우리는 4.3% 수준에도 부담스러워들 한다.

그러니 시급하게 보장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발라내고 필요한 재원을 분명히 하는 것, 크게 필요하지 않은 부분의 급여를 걷어내어 급여구조를 합리화하는 노력이 먼저다.

또한 병원을 옮길 때마다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고, 선택할 기회도 안주면서 선택진료비를 내야 하고, 원하지도 않는 상급병실에 가야 하는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을 급여에 포함시키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

더구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을수록 좋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의료비의 증가를 주도하는 것은 고가의 신기술 발전이며, 병든이의 마음은 고비용의 처방도 불사한다.

그렇기에 건강보험의 보장성 목표치는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반영해 적당한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그리고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민간보험에 가입해 더 대비할 수 있도록 판을 짜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급여에 포함시킬 개별항목의 효과와 비용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공시가 필요하며, 이는 급조된 보장성 수치를 왁자하게 떠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다.

다른 모든 정부 사업과 마찬가지로 의료 역시 목표에 관한 동의와 효과와 비용에 대한 분석이 먼저다.

매우 특별한 분야이나, 동시에 전혀 특별하지 않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