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절박한 심정으로 ‘벼랑끝 결단’을 내렸다.

검찰 수사 장기화로 인해 그동안 갖은 어려움 속에 쌓아올린 대외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수십년간 공들인 해외 시장이 붕괴될 처지에 놓이자 ‘어떻게든 기업부터 살리고 보자’는 고뇌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특히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 부자가 글로비스 보유 주식을 모두 내놓키로 함에 따라 경영권 승계 구도는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다.


◆ 경영정상화 위한 고육책

현대차그룹이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헌납과 강도 높은 투명 경영 방안을 내놓은 것은 기업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고강도 검찰 수사의 후유증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다.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로 그룹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돼 대외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흠집이 생겨나면서 그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대외신인도 및 브랜드 이미지 추락으로 매출의 70% 이상을 올리는 해외 시장에서의 생산 및 판매 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실제 검찰 수사 이후 지난달 말로 잡혀있던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착공식이 무기 연기됐다.

출국 금지 여파로 정의선 사장의 해외 출장이 취소되면서 다음 달로 예정된 슬로바키아 공장의 시험가동과 올 연말 양산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 기공식도 당초 계획과 달리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이런 분위기라면 다음 달로 예정된 현대차 체코 공장 착공식도 '주인없는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왔던 월드컵 마케팅 활동도 올스톱됐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들이 현대차 사태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돼 판매망이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전체 생산 물량의 7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로 대외 신인도가 추락할 경우 수출 영업에 치명타를 입을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환율 급락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수사로 신인도가 추락할 경우 향후 국내 경영은 물론 글로벌 경영에서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경영을 조속히 정상화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와 수습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사회공헌ㆍ투명경영


현대차그룹은 이번 사회공헌과 투명경영 방안 시행으로 그동안의 경영권 승계 논란이 종식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투명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당분간 지켜봐달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의선 사장의 경우 글로비스 지분을 전량 내놓게 돼 현금 동원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됐다"면서 "사실상 전문 경영인이나 다름없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번 검찰 수사를 계기로 사외이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설치,주요 의사결정 과정을 감시토록 한 만큼 앞으로 편법적인 승계 시도를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계열사 자금 흐름을 관장하고 중복 투자 등을 감시해온 기획총괄본부 조직을 대폭 줄이고 계열사 대표에게 보다 강력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제2의 글로비스 사태'가 일어날 소지를 원천봉쇄했다는 점도 거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사회공헌 및 투명경영 방안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파격적"이라며 "앞으로 이날 발표한 방안들이 현대차그룹 내에서 시스템으로 정착돼 제대로 시행되는지가 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