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20일 오전 대검 청사에 출두함에 따라 현대차 그룹 비자금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검찰은 정 사장을 상대로 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와 부채탕감 로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비자금 용처나 김재록씨 로비의혹 관련 부분도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현대차 그룹 총수 일가와 임직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일괄 결정키로 한 바 있어 정의선 사장의 진술이 다른 임원진의 처벌 수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글로비스 주식헌납'이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의선 사장 어떤 부분 조사받나 = 검찰은 정의선 사장의 소환 날짜가 정해지기 훨씬 이전부터 정 사장을 `피의자'라고 못박았다.

정몽구 회장이 출국했을 때 정 사장을 출금한 것만 봐도 정 사장에게 상당한 혐의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검찰이 "부(富)의 불법적인 축적과 이전을 잘 살펴봐야 하고 경제질서의 투명함도 보장돼야 한다"고 수사의 의미를 설명했을 때 이는 정 사장이 적법하게 증여세를 내지 않고 거액의 부(富)를 상속한 과정의 문제점을 짚은 것이기도 하다.

검찰은 정 회장 부자가 현대차 계열사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로 만들어 이중 한 개 기업만 장악해도 계열사 경영권을 차지하게 만든 뒤 글로비스를 급성장시켜 경영권 승계 종자돈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정 사장을 상대로 2001년 3월 글로비스에 부자가 전액 출자한 경위와 이후 계열사의 `물량 몰아주기'가 이뤄진 배경, 2005년 9월 노르웨이 해운회사인 빌헬름센에 회사 지분 25%를 1억달러에 매각한 이유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또, 2005년 11월 현대오토넷이 본텍을 인수합병하면서 본텍의 주식가치를 두 달 전 지멘스에 매각할 때(9만5천원)의 2.45배인 주당 23만3천553원으로 평가해 본텍 지분 30%를 가진 글로비스의 가치를 상승시키게 된 이유도 추궁 대상이다.

이 외에 현대차 그룹에 잇따라 편입된 위아㈜와 카스코㈜, 아주금속공업㈜ 등이 거액의 채무를 탕감받게 된 과정은 경영권 승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고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통한 금융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신문할 예정이다.

특히 검찰 수사에서 정 사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 회사 비자금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범죄수익 환수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비자금 용처 수사 역시 경영권 승계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정 사장 조사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비리나 부채탕감 로비 등 외에 정 사장 개인 비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정 사장에 대한 조사는 이날 밤 늦게까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비스 주식헌납' 효과볼까 = 정의선 사장은 검찰 소환 전날 `글로비스 주식 지분 전량 무조건 사회헌납'이라는 대책을 발표했고 이날 검찰에 소환돼서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며 몸을 낮췄다.

정몽구 회장 역시 미국에서 돌아오던 날 비자금 문제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던 자세를 바꿔 18일에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등 검찰 조사를 앞두고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현대차 주변에서는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다소 낮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검찰은 "주식헌납이 (처벌 수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고 단호하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중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현대차 본사 이정대ㆍ김승년 부사장을 체포했다 풀어준 검찰은 정의선 사장 소환을 불과 10시간 앞두고 김동진 부회장을 긴급체포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현대차 총수 일가를 몰아붙이고 있다.

검찰로서는 `돈으로 처벌을 흥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고 드러난 혐의는 드러난 대로 수사해야 하기 때문에 `글로비스 주식헌납'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중론이다.

오히려 검찰이 `현대차 관계자 일괄 사법처리'라는 방침을 정한 데 비춰보면 정의선 사장이 얼마나 혐의를 인정하느냐가 정 사장 본인과 현대차 임원진의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란 설명이 힘을 얻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