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사에서 맞춘 팀워크를 운동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죠."

2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인근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7명의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제 있었던 체육대회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옥션 인큐베이터(Auction incubator). 이 인터넷 쇼핑몰은 올 3월에 문을 열었다. 옥션과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공동으로 진행한 옥션 장애인 창업 스쿨 수료생 6명과 이들의 멘토였던 박진환 실장이 함께 만들었다.

박 실장을 제외한 6명은 사실상 창업 소사장이나 마찬가지다.

맏형격인 이혁진씨 (45·지체장애자 1급)는 "교육만 받고 흩어지지 말고, 같이 사업을 해보라는 박 실장님의 제안에 의기투합했다"면서 "소수정예부대"라고 자신만만해했다. 이씨는 27살에 모 회사 기술팀에서 일을 하다 기계가 넘어지는 바람에 하반신 불구가 됐다.

4년간의 재활 치료를 마치고 나서 다시 회사로 복직됐지만,1997년 외환위기로 권고 사직을 당했다.

이씨는 한동안 쉬다가 같이 회사를 나온 사람들과 수입상을 하게 됐다. 수입장사에 재미를 본 그는 2003년 옥션 장애인 창업 스쿨에 등록했다.

"수입상을 하면서 어떤 상품이 고객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알게 됐고, 이것을 인터넷과 접목시키면, 대박이 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는 현재 물침대,옥매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월 평균 500만원 정도 판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앞으로 노인들을 위한 실버상품 판매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씨의 사업이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유명상품 생산업체들로부터 문전박대를 수없이 당했다.

"일단 옥션에서 거래를 제의하면 호응을 하긴 하지만 계약까지 가는데는 어려움이 한둘이 아닙니다."

"신체적인 이유로 쫓겨난 경우는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말문을 돌렸다. "아침일찍부터 수없이 되풀이해서 찾아가면 결국 거래를 허락하더군요."

매트 메이커인 이와킴의 권지애 주임은 "변함없는 성실한 태도와 서비스에 거래선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의류를 다루는 고희숙씨(40·지체2급)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두 다리의 기능을 잃었다.

건강을 위해 27살 때 양궁을 시작, 장애인 국가대표를 지냈다.

2002년에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웠다.

"장애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욱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양궁국가대표 은퇴후 인생설계를 새로 해야 했다. "양궁밖에는 자신있는 일이 없어 우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는 우연히 선배를 통해 알게 된 창업 스쿨에 매력을 느껴 8 대 1의 경쟁을 뚫고 입학했다. 그도 박 실장의 눈에 들어 옥션 인큐베이터의 창립멤버로 뛰고있다. 그는 지난 한 달 동안 사이버시장에서 하루 20여개 정도 물건을 팔아 월 450만원 정도 매출실적을 올렸다.

고씨는 "상대방에게 신뢰와 열정을 전달하는 것이 첫 거래를 빨리 트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멘토로 출발해 사업파트너가 된 박 실장은 "사업 특성상 발로 뛰어 물품을 확보하고, 실시간 상품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들로선 많이 어렵다"고 전했다.

"경매 페이지에 올린 상품을 하나 고르는데 장애인 사이버 세일즈맨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습니다. 정상인들보다 10배나 많은 피땀이 스며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팀워크 덕분에 이 회사는 출범 첫달에 6000만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우리들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죠."

지난 3월 창업스쿨을 졸업하고 입사해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강윤정씨(40·지체 6급)는 매일 새벽 동대문과 남대문을 돌며 물건을 고른다. "새벽 일찍 시장을 돌아야 디자인이나 품질이 좋은 상품을 건져올린다는 장돌뱅이의 노하우를 터득했습니다."

이들은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어록 중에 '한번 해보기는 해봤어?'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이혁진씨는 "전국의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오직 실력으로만 평가 받는 인터넷 시장은 장애인들에겐 기회의 바다"라며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감회에 젖기도 한다"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옥션 본사의 지경민 과장은 "매출면에서도 정상인에 전혀 뒤지지 않지만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자력으로 재활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이 되고 있다"면서 "장애인들이라고 해서 특별배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상품 등록 수수료(1건당 평균 4000원) 정도를 면제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