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의 검찰 소환 일정이 발표된 21일 현대자동차그룹은 사실상 '경영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임직원들은 정 회장 소환이 예고된 일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참담한 현실에 경악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 수사로 인한 경영 공백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업무에 매달려왔던 직원들마저 충격감 속에 일손을 놓아 사실상 그룹 전체의 업무가 올스톱됐다.

◆ "설마했는데 우려가 현실로"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은 정 회장의 소환 일정이 오는 24일 오전 10시로 확정되자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며 공황 상태에 빠졌다.

임직원들은 검찰 수사가 길어지면서 '지류'가 '본류'로 바뀌고 단순 인·허가 로비 의혹에서 비자금 조성과 부채 탕감,경영권 승계 논란으로까지 번져 총수 부자가 소환되는 지경에 이르자 당혹감을 넘어 충격에 휩싸였다.

사무실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직원들은 일손이 잡히지 않는 듯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는 등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이후 이어져온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었다.

한 직원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 이어 정 회장까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마당에 일할 의욕이 생기겠느냐"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직원은 "이러다가 회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직원은 "그동안에도 기획과 자금을 담당하는 핵심 임원들이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는 바람에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정 회장까지 소환되면 사실상 그룹의 대내외 업무가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정 회장의 소환 자체만으로도 현대차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지겠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일부 임직원은 정 회장의 소환을 준비하느라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 경영패닉 장기화 우려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은 무엇보다 이번 소환의 충격으로 정 회장이 경영 의욕을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룹 내에서의 그의 위상과 역할에 비춰볼 때 '정 회장의 경영 의욕 상실'은 자칫 그룹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 회장이 그동안 철저한 현장경영 원칙에 입각,주요 비즈니스를 일일이 챙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추진력으로 국내외에서 복잡하게 얽힌 난제들을 풀어가는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사업 추진 계획만 수립해 둔 채 진척이 없었던 기아차 미국 공장 건설과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립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할 정도다.

또 중국 정부의 기술 이전 압력 등으로 성사가 불투명했던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 착공식을 예정대로 진행시켰고,시기상조라는 일부의 지적 속에서도 유럽 공장(체코) 건설에 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이번 소환에 충격을 받아 그동안의 왕성한 활동을 접을 경우 국내외 사업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적 판단과 의사 결정,강력한 추진력 등에 기반을 둔 리더십"이라며 "정 회장의 경영 활동이 위축되면 현대차는 선장 잃은 배처럼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