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03년 말 리비아 핵시설을 사찰하던 중 한국산 밸런싱머신을 발견,우리 정부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정부는 조사 결과 해당 밸런싱머신이 허가 없이 수출됐다는 점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해당 D사에 1년간 수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밸런싱머신은 선풍기 세탁기 자동차바퀴 등 회전체의 균형 정도를 재는 측정 장비다.

D사는 산업용 장비여서 수출 때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장비가 핵개발 관련 부품으로 전용될 수 있어 통제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원칙대로 법을 집행했다.


국가간 이동에 제약이 가해지는 전략물자는 미사일 같은 무기류뿐만이 아니다.

밸런싱머신처럼 해당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품목도 전략물자가 될 수 있다.

테니스라켓,골프채,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백열전구 필라멘트 등의 재료도 경우에 따라선 전략물자로 판정받을 수 있다.

테니스라켓의 줄은 가볍고 강한 탄소섬유로 만들어진다.

이 탄소섬유는 미사일 날개와 로켓추진기관모터 케이스의 재료로도 쓰인다.

탄소섬유를 테니스라켓의 줄로만 사용된다는 것을 증명하면 수출이 자유롭지만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수출이 불허되는 것이다.

알루미늄 분말은 주로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로 쓰이지만 로켓 추진 발사연료로도 전용이 가능하다.

난로나 맨홀의 뚜껑에 활용되는 입상흑연은 마음만 먹으면 미사일의 노즐로 바꿔 쓸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이 2003~2004년 중국과 태국을 경유해 북한에 보내려다 발각된 청화소다(시안화나트륨)는 대개의 경우 도금,농약,의약품 중간체 등의 목적으로 거래되지만 대량 인명살상이 가능한 화학무기의 재료로도 활용된다.

정부는 특히 최근 들어 수출이 늘고 있는 반도체장비,원자력발전 관련 주요 부품,화학공업 관련 설비,석유시추설비,인공위성 관련 부품 등은 대부분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런 통제대상 전략물자는 누가 정할까.

국가간 협의를 통해 정한다.

핵공급그룹(NSG),호주그룹(AG),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바세나르협약(WA) 등 이른바 4대체제에 가입해 있는 회원국들이 매년 한 차례 총회를 열어 통제 품목을 추가하거나 수정,삭제한다.

물자별로 보면 △핵무기 관련은 핵공급그룹 △생화학무기는 호주그룹 △미사일 및 운반체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 △재래식 무기는 바세나르협약에서 각각 다룬다.

각 나라는 4대 체제에서 확정한 전략물자를 국내 법규에 반영한다.

한국은 산자부·과기부의 전략물자·기술수출입 통합공고,미국은 상무부의 수출관리규정(EAR),유럽연합(EU)은 EU통제리스트 등이다.

심성근 산업자원부 전략물자제도과장은 "전략물자를 국제적으로 협의해 정하기 때문에 통제규정이 국제규범으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통제대상 전략물자는 구체적 상품으로 봤을 때 대략 1만개에 이른다.

통제대상 리스트는 A4용지 기준으로 500페이지에 달한다.

정부는 이 품목을 기업 관계자들이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무역협회 산하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 홈페이지(www.sec.go.kr)를 통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확인 결과 전략물자에 해당되면 순수 산업 혹은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됨을 증명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수출해야 한다.

만약 이런 과정 없이 수출했다가는 1년간 수출금지는 물론 대표이사가 최고 5년간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