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점가에선 영국인 빌 에모트(Bill Emott)가 일본경제의 부활을 주제로 쓴 '해는 다시 뜬다(The sun also rise)'가 화제다.

연초 출간 이후 3개월 만에 20만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코노미스트지 편집장 출신인 에모트는 1989년 일본경제 호황기 때 펴낸 '해는 다시 진다'에서 버블 붕괴를 예측해 화제가 됐던 인물.그는 서문에서 "정계에서 '별종'으로 불리는 고이즈미 총리가 있었기에 일본 개혁이 가능했다"며 "일본인에게 맞는 '거북이식' 개혁을 펼쳐 일본경제가 부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26일로 취임 5년을 맞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64)는 56명의 역대 총리 중 세 번째 장수 기록을 세우게 됐다.

파벌 정치가 득세하는 자민당에서 소수파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에모트의 지적처럼 구조개혁과 경제의 부활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보다 오래 재임한 2명의 총리 모두 위대한 총리로 평가받는 인물들이다.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1960년대 후반부터 7년8개월 동안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이끌었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다.

핵확산금지 조약을 맺어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두 번째로 장수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일하면서 패전한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들에 비해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특히 외교 문제에선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중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 갈등을 확대시켰다.

또 러시아 중국 한국 등 이웃나라와의 영토 분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됐다.

제2 경제대국다운 리더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민당내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들조차 그를 '외교 낙제생'이라고 비판하고 나설 정도다.

도시와 지방,상류층과 하류층간 빈부 격차도 커져 일본이 자랑해온 '90% 중류사회' 신화도 깨졌다.

요미우리신문이 주초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60% 이상의 국민들이 '계층 격차가 확대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23일 수도권에서 실시된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63)는 자민당 심판론을 전면에 내걸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경제면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 등 주요 도시 지가는 15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 일본경제의'고질병'이던 디플레(물가하락)에서 벗어났다.

대기업들은 사상 최고 이익을 내고 있다. 미국 기업처럼 직원들을 함부로 자르지 않고 사람을 중시하며 노사화합을 중시하는 '일본식 경영'에 대한 예찬론도 다시 나오고 있다. 버블 붕괴 주범이던 금융권도 완전 정상화됐다.

고용이 늘고 임금이 오르면서 소비시장이 살아나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기업에 개혁을 강요하기 전에 공무원을 대폭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공공개혁에 착수,솔선수범을 보여줬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소 '야레바 야리마스(하면 된다)'를 외치면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줬다. 9월 퇴임 후 종합적인 평가가 어떻게 내려질지 주목된다.

최인한 도쿄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