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 1세대이자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인 안철수씨(44)가 학생이 되어 돌아왔다.

안철수연구소 대표에서 물러나 홀연히 미국 유학길을 떠난 지 1년여 만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합격증을 들고 잠시 귀국했다.

25일 서울 안철수연구소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씨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지난해 이맘 때 미국으로 갔는데 신문을 봐도 큰 제목부터 모르는 단어가 나오고… 역시 영어는 어렵다"면서 "토플 시험도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 고생 좀 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공부하게 돼 행복하단다.

"20대 젊은이들 틈에서 공부하니까 정말 좋네요. 공부는 고생은 되지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안씨는 샌프란시스코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MBA에서 1년간 공부한 뒤 내년 귀국할 예정이다.

특히 벤처기업들에 미래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공부에 힘쓸 계획이다.

그는 1년간 미국생활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뭐냐고 묻자 "인터넷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정보 격차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안씨가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웹 2.0'.일방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웹 1.0'에서 진화해 사용자가 참여하고 공유하며 개방하는 서비스다.

그런데 한국 직원들,기자,정보기술(IT) 업계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웹 2.0'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화두를 한국 IT업계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안씨는 '웹 2.0'에 대해 '탈권위주의'라는 세계적 흐름이 테크놀로지에 접목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기업 지배구조나 사회구조,IT 모두가 탈권위주의로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울러 소프트웨어 3대 키워드를 아웃소싱,오픈소스,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로서 소프트웨어)라고 지적했다.

특히 SaaS는 업계 패러다임을 바꾼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보안업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안씨는 "보안은 자국의 화폐라든가 국방과 같은 개념"이라며 "국방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듯이 국내 보안회사들이 사명감과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근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는 보안회사나 보안업계의 일부 경향 등에 대한 지적인 셈이다.

개각 때마다 정보통신부 장관 1순위에 거론되는 그이지만 이에 대해선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저는 정계나 관계 같은 데서 일할 사람이 못 됩니다. 최소한 제가 잘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으니 잘하는 걸 찾아서 하겠습니다."

안씨는 와튼스쿨 MBA 과정 이수 후의 행로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거나,안철수연구소로 복귀하거나,다른 사업을 창업하거나,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는 원래 장기적인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합니다. 그냥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음 길이 보이더라고요. 다음에 무엇을 하게 될지는 학업을 마칠 때쯤 알게 되겠지요."

안씨는 이 말로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