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바꾸는 일은 어렵다.

지극히 간단해 보이는 것도 실제 시도하려면 숱한 난관이 따른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 묵은 것일수록 더 그렇다.

문제가 심각한 줄 다 알아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점진적 개혁보다 혁명이 더 쉽다고 할까.

왜 그런가.

어째서 사소한 변화나 타파도 그토록 어려운가.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어떤 일에나 달라진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있고,변화에 따라 기득권을 잃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도 결과를 확신하긴 어렵고 그 책임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선뜻 나서지 못한다.

변화엔 또 언제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이나 복병이 수반될 수 있다.

1983년 단행됐던 교복 자율화는 대표적인 예다.

청소년들의 심리적 위축감을 해소시키고 개성과 책임의식을 키운다는 목표 아래 이뤄진 획기적인 조치였지만 자유 복장에 따른 위화감 조성과 탈선 가능성 확대라는 벽에 부딪쳐 3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뭐든 거꾸로 가면 돌이키기 힘들다.

교복 역시 재등장한 지 20년이 되도록 소재와 형태면에서 거의 꼼짝하지 않았다.

학교별로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다지만 하복의 경우 남학생은 와이셔츠에 긴 혼방 바지,여학생은 블라우스에 역시 혼방 치마 등의 기본엔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여학생은 어떻게든 맵시를 내본답시고 몸에 꼭 맞게 고쳐입곤 선생님 눈치보랴,자꾸 올라가는 블라우스 내리랴 쩔쩔매고,남학생은 여름이면 흰 티셔츠 위에 교복 남방을 걸쳐 입곤 단추를 죄다 풀고 다닌다.

뿐이랴.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젖은 채 다리에 휘감기는 혼방 바지를 떼어내느라 고생이다.

가격 또한 웬만한 어른 정장 한벌 값과 맞먹는데 무슨 일인지 교복대리점의 서비스는 형편없다.

서울 목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올 여름부터 남녀 학생에게 기존 교복 대신 상의는 깃 있는 흰색 티셔츠,하의는 짙은 청색 면 반바지를 입도록 했다는 소식이 반가운 건 그런 까닭이다.

아무래도 눈에 더 띄는 티셔츠는 같은 걸로 공동구매하고,바지는 알아서 입도록 했다는 내용은 더 '감동적'이다.

따지고 보면 조금도 어려울 게 없는 일이다.

교복 자율화의 문제점이 드러난 후 정부 지침은 교장 재량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위화감은 물론 탈선 우려 문제 역시 꼭 교복이 아니라도 실용적인 걸로 통일하면 해결되는 사안이었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으면 기존 교복값에 훨씬 못미칠 것이다.

아이들은 편하고 시원할 테고,엄마들은 한여름에 와이셔츠나 블라우스를 다리느라 땀 흘리지 않아도 되니 일석삼조다.

이렇게 단순한 일이 이뤄지는데 20년이나 걸린 사실은 우리 교육현장의 낙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혁신이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입증한다.

관행 타파와 혁신은 그것을 주도하는 이의 용기와 떳떳함을 전제로 한다.

반바지 교복이 실천에 옮겨진 건 무엇보다 교장선생님이 학생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른 학교에서 튄다고 할까 눈치보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나 이익을 위해 애써 모른 체하지 않는,용기와 결단력 책임감을 지닌 조직의 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늘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