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동안 급박하게 달려온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가 27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검찰은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법과 원칙'을 중시했다고 밝혀 향후 기업 관련 사건에서 이 같은 원칙을 계속 적용할지 주목된다.

그동안 기업인의 범죄,특히 대기업 관련 비리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는 비난을 받았던 검찰이 이번만큼은 '강경 대응'한 셈이다.


1000억원 횡령,3000억원 배임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27일 "100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하고 3000여억원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정몽구 회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02년부터 올해 초까지 현대차와 기아차,글로비스 등 6개 계열사를 통해 100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또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정 회장이 기아차의 옛 계열사인 아주금속과 위아의 채권을 헐값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41억원의 로비 자금을 쓰고 550여억원의 부채를 편법으로 탕감받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비자금 조성과 기업 비리 관련 수사를 마무리지은 검찰은 다음 주부터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와 전 회계법인 대표 김동훈씨의 로비 의혹 등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비자금이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건네졌는지와 현대차 양재동 사옥 인·허가와 관련해 서울시 공무원 등을 상대로 한 로비가 있었는지 여부가 비자금 용처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내부 문건을 통해 제기된 현대차 비자금의 '대선자금 잔금설'도 검찰이 규명해야 할 의혹 중 하나다.


'법과 원칙' 강조

채 기획관은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편법 승계로 기업에 손해를 가한 책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며 대주주가 횡령이나 배임 등으로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기업 비리를 수사할 것"이라며 "기업 경영의 투명성 확보는 2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한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사실상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진행됐고 정 회장 구속에 대해서도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 간에 큰 이견이 없었다는 점에서 검찰 전체가 기업 비리 엄단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형사처벌 내용,발표 방식 두고 우왕좌왕

검찰 수사팀이 최종 수사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첫 회의를 가진 것은 25일 오전.정상명 검찰총장은 이날 중으로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정 회장 등의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주요 관련자들의 형사 처벌 수위에 대한 수사팀 내 의견 조정이 늦어지면서 수사 결과 보고는 다음날로 미뤄졌다.

26일 오전 또 한 차례 회의를 가진 수사팀은 이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정 총장에게 보고서를 올렸고 정 총장은 오후 6시30분 결단을 내렸다.

당초 "27일 총장의 결정 내용을 발표하겠다"던 검찰은 26일 오후 7시20분께 예정에 없던 기자 브리핑을 열어 "총장이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발표 방식을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