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습 작전 돌입부터 그룹 총수 영장 청구까지 현대차그룹 수사는 한 달여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경제정의론'과 '경제위기론'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의 경영공백으로 인한 매출 감소 등 '후폭풍'이 커질 경우 검찰은 거센 비난을 받게될 전망이다. 정작 수사의 빌미를 제공했던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에 대한 수사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처음부터 현대차를 노린 '기획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검찰은 100여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현대·기아차 본사와 글로비스,현대오토넷을 동시에 전격 압수 수색했다.

검찰은 기업 활동에 지장을 덜 주기 위해 휴일에 압수 수색했다고 밝혔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전리품을 손쉽게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검찰은 이날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집무실과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사무실을 아무런 제지 없이 훑을 수 있었고 정확한 제보를 바탕으로 그룹 핵심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비밀 금고까지 열었다.

이틀 뒤인 29일 그 금고를 관리해 왔던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이 구속됐다.

이 때부터 검찰은 로비스트 김재록 사건과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분리해서 수사하겠다는 이른바 '투 트랙(Two Track)' 수사 돌입을 공언했다.

이 와중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앨라배마공장 방문 등을 이유로 이달 2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검찰은 3일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한 뒤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 비리도 수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지류'에서 '본류'로 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 회장은 출국한 지 6일 만인 이달 8일 귀국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속도는 더 빨라졌다.

13일에는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로비스트라며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구속했다.

검찰은 20일 정 사장을 소환한 데 이어 24일 정 회장을 조사했다.

당초 현대차 비자금 사건은 김재록씨의 다른 기업에 대한 로비 수사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수사 초기만 해도 현대차 수사가 김재록씨 로비 의혹이라는 나무의 한 '가지'에 불과해 그룹 전체로 수사가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어느새 나무의 '기둥'이 되어 버렸다.

정 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뒤 정작 수사의 빌미를 제공했던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와 관련,검찰은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비자금 용처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투 트랙이니 지류니 하는 것은 단순한 말뿐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