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남북 합작 광산인 황해도 정촌흑연광산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을 출발한 것은 4월27일 오전 7시10분.남측 기업인들을 실은 버스는 20분여 만에 시내를 빠져나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오가는 자동차가 한 시간에 10대가 될까말까 할 정도로 한적한 고속도로였지만 버스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군데군데 파인 홈과 공사 지점을 피하느라 기우뚱거리기를 수차례.버스는 황해도 평산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해주 방면 비포장도로로 향했다.

차창에 비쳐진 북한의 농촌은 한 마디로 '붉은 색'이었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갈아놓은 논과 밭의 검붉은 황토빛은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산이 벌거숭이산이다.

땔감이 부족해 나무를 베어낸 탓이다.

굽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선동 구호 입간판 역시 짙은 붉은 색이다.

'장군님 따라 천만리'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선군정치 만세'….구호의 왕국이다.

189km인 정촌까지 도착하는 데는 꼬박 4시간이 걸렸다.

김춘근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부회장은 준공식에서 "정촌흑연광산을 계기로 북과 남이 협력해 제2,제3의 합작 광산을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민경련은 북한에서 대남 경제협력 창구를 맡고 있는 기관.대한광업진흥공사와 함께 분단 61년 만에 첫 합작 광산을 탄생시킨 주체다.

행사에 참석한 150여명의 남한 기업인들은 김 부회장의 축사에 박수를 보냈지만 회의적인 표정을 감추지 않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았다.

강태환 삼탄 사장은 "북한이 아직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지 못해 또 다른 합작사업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저녁 평양에서 북한 당국이 남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가진 투자설명회에서도 양측의 시각차는 완연했다.

남한 기업인들이 김 부회장에게 "무엇보다 경제적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자 김 부회장은 "먼저 신뢰를 보여 달라"고 반응했다.

김 부회장은 "북남 협력사업은 이익을 추구하면 잘 되지 않고 민족 공동의 번영과 이익을 목표로 믿음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기업인은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고 자본주의 기업인은 친척과 거래해도 이익을 생각한다"며 "광물이 북한 땅 어디에 얼마나 매장돼 있고 품질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투자를 할지 말지 생각할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전력과 도로 등 인프라도 남북 경협을 진척시키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개발돼 있던 정촌흑연광산을 북한이 내버려둔 이유도 전력 부족이었다.

정촌광산 준공도 광진공이 투입한 발전기가 있어 가능했다.

방강수 민경련 정책실장도 "현재 북의 석탄광산에서 많은 양의 석탄을 캐내고 있지만 설비와 자재가 투자되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열악한 전력으론 광산개발을 하기가 부족하며 따라서 남한에서 전력을 끌어와 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 기업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도 상당한 발전"(박양수 광진공 사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 실장은 28일 분과별 토론회에서 "다른 나라와 북의 광물자원 공동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기업인 상대 투자설명회 자체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북한의 광물자원을 중국이 싹쓸이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약간은 씻어졌다.

기업인 중에선 이 같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정촌·평양=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