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벤처1000억클럽' 출범식에 참석한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는 "이제부터가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네트워크 장비와 초고속인터넷솔루션분야의 국내 대표업체인 다산네트웍스는 지난해 4년간 지속돼온 적자에서 벗어났고 매출액도 1206억원을 달성,벤처1000억클럽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세계 각지의 한인벤처들을 네트워크로 연결,국내 벤처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인케(INKE·한민족 글로벌 벤처 네트워크) 의장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남 대표는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다시 벤처정신으로 무장하고 해외시장으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벤처기업은 해외시장에서의 진검승부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게 그의 벤처 지론이다.

-벤처 1000억 클럽에 가입한 기쁨이 남다를 텐데.

"그동안 벤처 선발업체이면서도 딱히 좋은 성과를 못내 면목이 안 섰는데 이번에 가슴 한 켠의 응어리를 풀어 뿌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기쁨보다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매출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때의 느끼는 생존감과 1000억원대 생존감은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망하지 않고 얼마나 더 오래 이 자리를 지켜낼 것인가를 생각하면 겁부터 난다.

그래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상식에서 벗어난 거래관행 등 주변에 시한폭탄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뒷걸음치는 기업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2004년 지멘스로부터의 외자 유치가 회사 성장의 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는 벤처기업이 외국기업에 지분을 팔면 국부를 유출하는 '매국노'로 비난받을 때였다.

하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고 돌이켜보면 옳은 선택이었다.

IT 거품 붕괴와 과당경쟁 등을 견디지 못해 동종 벤처들이 잇따라 문닫는 위기상황을 탈출할 묘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지멘스다.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자고 제안하는 지멘스에 1억달러를 투자해 주면 1대 주주자리를 내줄테니 아예 결혼식을 올리자고 요구했다.

그래야 회사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내 지분 중 일부를 넘기는 문제 등으로 협상자체가 깨질 위기도 있었지만 홍콩 도쿄 뮌헨 상하이 서울을 오가며 5개월간 마라톤 협상을 통해 성사시켰다."

-지멘스는 다산의 무엇을 보고 투자했나.

"지멘스는 인터넷 기술,특히 ATM 방식의 ADSL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핵심기술을 우리가 보유하고 있었다.

1대 주주가 된 지멘스는 다산을 정보통신 부문의 핵심 R&D센터로 키우기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했다.

그동안 적자 속에서도 매출액의 10~20%를 R&D 비용으로 투자해온 다산에 지멘스의 등장은 R&D 투자규모의 파격적인 확대효과를 가져왔다.

이후 직원을 200명에서 500명으로 늘렸고 이 중 250명 이상을 연구개발과 품질 및 기술 인력으로 확충했다.

-까다로운 일본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은.

"2000년대 들어 IT불황과 국내 초고속 인터넷시장의 수익성 악화로 국내 시장은 한계에 부딪친 상황이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00년부터 미국 중국 일본시장을 두드렸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시장에서는 수백만달러만 날리고 사실상 접어야 했다.

다행히 일본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국내시장의 부진을 메워나갔다.

일본 거래처를 뚫을 때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최고경영자와 실무자를 매일 찾아다니며 전방위 영업을 했다.

1년쯤 지나자 실무자가 '다산의 정성에 감동받았다'며 인연을 맺어보자고 제안해 거래를 텄고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지난해 일본 수출 500억원을 달성했고 올 연말 일본 내 신규 거래처를 확보할 예정이어서 내년엔 1000억원의 수출이 기대된다."

-경영원칙이 있다면.

"그동안은 벤처기업에 맞게 '스피드 경영'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이젠 속도를 중시하는 스피드경영보다는 '품질경영'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매출액이 1000억원대를 넘어섬에 따라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과외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 회사로선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일본시장에서도 한때 불량품 문제로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이후 혁신팀을 만드는 등 품질분야 조직을 강화했다.

또 직원들의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내 동호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사원대표 모임인 '주니어보드'에서 결정하는 사원복지 방안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행한다.

최근엔 직원들이 사보 '다산웹진'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벤처기업 수가 3년6개월 만에 1만개를 재돌파했다. 후배 벤처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도 벤처기업을 도덕불감증에 젖어있는 집단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는 그동안 벤처인들이 경영과오를 저질러온 업보다.

그래서 '정도경영'을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앞지르지도 말고,서두르지도 말고 자신의 실력에 맞게 회사를 키워야 한다.

실력은 없는데 과욕으로 행운을 잡게 되면 모럴해저드에 빠질 수 있고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도경영을 하다 보면 시장이 회사를 알아서 평가하게 된다.

또 국내에만 안주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좁다.

넓은 시장에서 벤처정신으로 무장하고 글로벌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