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의 엔고때 일본의 대기업들은 환차손을 자체 흡수해가며 중소기업들에 원가절감 방안을 코치했다.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엔고를 버틴 데에는 이런 상생협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작년 이맘때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김 회장이 부러워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모델은 요즘 국내 산업계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현대차 그룹이 2010년까지 15조원을 협력업체에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포스코도 인력양성과 기술개발 지원을 골자로 한 중소기업 지원 계획을 내놓았다.

삼성그룹은 협력업체에 1조원대의 유휴설비를 지원하고 현금결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LG그룹은 경영노하우 전수와 중견인력 파견을 검토하고 있고 SK그룹은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 등의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대기업들의 이런 상생협력 프로그램은 최근 원화절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계에 진정한 의미의 '상생' 풍토가 형성되려면 아직 더 채워야 할 부분이 있다.

상생(相生)이라고 하면 흔히 '갑과 을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것'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오행설(五行說)에서 말하는 상생의 참뜻은 이와 조금 다르다.

즉 금(金)에서 수(水)가,수(水)에서 목(木)이,목(木)에서 화(火)가,화(火)에서 토(土)가,토(土)에서 다시 금(金)이 생기는 것이 상생이다.

이를 기업간의 관계로 치환해 표현하면 'A기업이 B기업을 살리고,B기업은 다시 C기업을 살리고…'하는 식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상생의 참된 의미는 어느 두 기업이 서로 돕는 차원이 아니라 도움의 연결고리가 계속 확산되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재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생협력 바람은 아직 미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완성시키려면 삼성 현대 LG 등의 도움을 받는 1차 협력업체들이 그 도움의 과실을 다시 자신들의 2차 협력업체에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내 산업계의 상생은 이런 단계에 못미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납품단가 삭감행태가 2차,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소기업청이 다음 달부터 실시할 불공정하도급 조사에 중소기업간 거래를 포함시키키로 한 것도 이런 실태를 방증한다.

중기청 관계자는 "대·중소기업간보다 중소기업간의 불공정 거래가 더 심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조사배경을 설명했다.

마침 이번 주는 중소기업인들의 연중 최대 행사인 '제18회 중소기업주간'이다.

지난 토요일 열린 '중소기업 사랑 마라톤대회'를 시발로 한 주 동안 전국에서 80여개 행사가 열린다.

그 대미는 다음 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이다.

이런 행사들이 국내 산업계에 '상생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혁 벤처중기부장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