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상속세' 딜레마] "상속세 없는 호주.캐나다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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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해양 대국이었던 스페인이 몰락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농민들이 농토를 버리고 집시로 떠돌면서 국가의 생산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집시가 늘어난 것은 농민들에게 부과되던 유산세가 가혹해서였다.
중세의 스페인은 가장(家長)이 죽으면 영주에게 최고의 암소를 바치도록 했다.
하지만 영주는 그것을 다시 농민들에게 돌려보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의 스페인 왕실은 달랐다.
세리(稅吏)를 보내 암소를 직접 징수토록 했다.
과세 범위도 가장에서 전 가족 구성원으로 확대했다.
농사를 계속 지으려면 아무도 죽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짧은 수명 주기와 높은 영아 사망률은 가난한 농부들에게 큰 재앙이었다.
그들은 도시로 나와 집시의 무리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세금은 때때로 납세자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야기하게 마련이다.
가능한 절세 방법을 찾다가 한계에 부딪치면 차라리 세금이 없는 곳으로 도피해 버리고 마는 것은 동서고금에 늘 있던 일이다.
수도권의 중소 운송업체 대표 A씨(65)는 자산가치 100억원짜리 회사를 정리하고 외국으로 투자 이민을 떠나기로 했다.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부담해야 할 상속·증여세를 계산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50억원짜리 상가를 처분하면 세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36%에 달하는 양도소득세가 부담이 됐다.
"결과적으로 100억원짜리 회사를 물려주는데 50억원의 상속세와 18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되더라고요.
여기에다 내년에 증여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할증 과세를 받아 10억원을 더 내야 합니다.
하도 기가 막혀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다녔더니 누가 '세금 없는 나라로 이민을 떠나라'고 귀띔하더군요."
사실 A씨가 호주나 캐나다처럼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 이민 가면 50억원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다.
보유 상가를 처분하면 양도소득세는 부담해야 하지만 관할 세무서에서 자금출처 확인서 한 장만 받으면 기업 재산을 인출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A씨가 받는 유일한 스트레스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망설임이다.
자녀들이 물려받은 재산으로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는 데 안주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회의감도 없지 않다.
최근 들어 A씨처럼 현실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업인으로서의 자세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필리핀 등 물가가 싼 지역에 재산을 옮겨놓고 자녀들은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 보낸 뒤 여생을 즐긴다는 전직 기업인들의 소문도 들려 온다.
얼마 전 40대 전후의 기업 후계 경영자들이 서울 강남의 한 갈비집에 모인 자리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유가 환율 등 최근의 경영 환경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던 중 대화의 주제가 경영권 승계 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아버지 돌아가시면 골치 아픈 사업 다 팔아치우고 해외로 나가지 뭐"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팔기는 왜 팔아.세금 없는 곳으로 기업을 통째로 옮겨가면 돼"라고 받았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비록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얘기들이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조일훈.김동윤.유창재 기자 jih@hankyung.com
집시가 늘어난 것은 농민들에게 부과되던 유산세가 가혹해서였다.
중세의 스페인은 가장(家長)이 죽으면 영주에게 최고의 암소를 바치도록 했다.
하지만 영주는 그것을 다시 농민들에게 돌려보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의 스페인 왕실은 달랐다.
세리(稅吏)를 보내 암소를 직접 징수토록 했다.
과세 범위도 가장에서 전 가족 구성원으로 확대했다.
농사를 계속 지으려면 아무도 죽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짧은 수명 주기와 높은 영아 사망률은 가난한 농부들에게 큰 재앙이었다.
그들은 도시로 나와 집시의 무리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세금은 때때로 납세자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야기하게 마련이다.
가능한 절세 방법을 찾다가 한계에 부딪치면 차라리 세금이 없는 곳으로 도피해 버리고 마는 것은 동서고금에 늘 있던 일이다.
수도권의 중소 운송업체 대표 A씨(65)는 자산가치 100억원짜리 회사를 정리하고 외국으로 투자 이민을 떠나기로 했다.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부담해야 할 상속·증여세를 계산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50억원짜리 상가를 처분하면 세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36%에 달하는 양도소득세가 부담이 됐다.
"결과적으로 100억원짜리 회사를 물려주는데 50억원의 상속세와 18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되더라고요.
여기에다 내년에 증여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할증 과세를 받아 10억원을 더 내야 합니다.
하도 기가 막혀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다녔더니 누가 '세금 없는 나라로 이민을 떠나라'고 귀띔하더군요."
사실 A씨가 호주나 캐나다처럼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 이민 가면 50억원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다.
보유 상가를 처분하면 양도소득세는 부담해야 하지만 관할 세무서에서 자금출처 확인서 한 장만 받으면 기업 재산을 인출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A씨가 받는 유일한 스트레스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망설임이다.
자녀들이 물려받은 재산으로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는 데 안주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회의감도 없지 않다.
최근 들어 A씨처럼 현실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업인으로서의 자세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필리핀 등 물가가 싼 지역에 재산을 옮겨놓고 자녀들은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 보낸 뒤 여생을 즐긴다는 전직 기업인들의 소문도 들려 온다.
얼마 전 40대 전후의 기업 후계 경영자들이 서울 강남의 한 갈비집에 모인 자리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유가 환율 등 최근의 경영 환경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던 중 대화의 주제가 경영권 승계 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아버지 돌아가시면 골치 아픈 사업 다 팔아치우고 해외로 나가지 뭐"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팔기는 왜 팔아.세금 없는 곳으로 기업을 통째로 옮겨가면 돼"라고 받았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비록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얘기들이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조일훈.김동윤.유창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