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에너지, 내부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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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은 언론 간담회 자리에서 "고유가보다 원·달러 환율하락이 더 걱정"이란 말을 했다. 환율이 경쟁국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 우리 수출업계의 고통이 큰 반면 고유가는 모든 경쟁국들이 다 같이 당하는 문제라서 그렇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21세기 들어 첫 번째 오일쇼크가 될지 모른다는 지금의 고유가는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고 있는 산유국들과 이 틈을 노려 자원민족주의를 들고 나오는 국가들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난해야 하나.
그것이 아니라면 투자는 하지 않고 인수·합병 등 머니게임에 치중한 석유 대기업들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의 과소비, 중국의 고도성장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하나. 그도 저도 아니면 정말 누구 말대로 국제 선물시장의 투기꾼들이나 음모꾼들에게 우리 모두 놀아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고유가가 꼭 누구탓이라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 모두 자유롭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가들로선 이들이 일종의 외부 공적들인 셈이다. 하지만 적은 밖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 등 3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오자 참여정부 들어 비로소 자원외교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안정적 에너지 도입'에서 '적극적 해외자원 개발' 중심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왜 진작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왜 안했겠는가. 해외자원개발촉진법을 제정한 것이 1978년이다.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해였다. 그렇다면 거의 30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80~90년대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원외교는 퇴색되고 말았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해외자원개발도 크게 위축됐다. 자원외교도 유가 사이클을 따라왔던 것이다.
정부는 2004년을 신·재생에너지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소연료전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중을 2011년까지 총 1차 에너지의 5%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의지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만 다를 뿐 소위 대체에너지법이 제정된 게 1987년이다.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부는 대체에너지가 경제성이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탓하고 싶겠지만 분명한 건 90년대 저유가 시대가 오면서 정부의 관심과 투자도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정책 불확실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원자력은 어떤가. 고유가, 에너지 공급불안 등을 생각할 때 원전 얘기가 안 나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속으론 원전비중을 프랑스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을 만도 한데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문제라며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것 같다. 에너지 리더십은 어디로 갔는지….
정부만 탓하려는 게 아니다. 에너지는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한번 왜곡되면 바로잡기가 정말 어렵다. 당장 좋은 게 좋다는 기업과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적이다. 시민·환경단체의 대안없는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공범이다. 똑같은 고유가도 준비된 국가와 준비 안된 국가에 대한 충격이 같을 수 없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이유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21세기 들어 첫 번째 오일쇼크가 될지 모른다는 지금의 고유가는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고 있는 산유국들과 이 틈을 노려 자원민족주의를 들고 나오는 국가들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난해야 하나.
그것이 아니라면 투자는 하지 않고 인수·합병 등 머니게임에 치중한 석유 대기업들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의 과소비, 중국의 고도성장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하나. 그도 저도 아니면 정말 누구 말대로 국제 선물시장의 투기꾼들이나 음모꾼들에게 우리 모두 놀아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고유가가 꼭 누구탓이라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 모두 자유롭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가들로선 이들이 일종의 외부 공적들인 셈이다. 하지만 적은 밖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 등 3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오자 참여정부 들어 비로소 자원외교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안정적 에너지 도입'에서 '적극적 해외자원 개발' 중심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왜 진작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왜 안했겠는가. 해외자원개발촉진법을 제정한 것이 1978년이다.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해였다. 그렇다면 거의 30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80~90년대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원외교는 퇴색되고 말았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해외자원개발도 크게 위축됐다. 자원외교도 유가 사이클을 따라왔던 것이다.
정부는 2004년을 신·재생에너지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소연료전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중을 2011년까지 총 1차 에너지의 5%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의지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만 다를 뿐 소위 대체에너지법이 제정된 게 1987년이다.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부는 대체에너지가 경제성이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탓하고 싶겠지만 분명한 건 90년대 저유가 시대가 오면서 정부의 관심과 투자도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정책 불확실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원자력은 어떤가. 고유가, 에너지 공급불안 등을 생각할 때 원전 얘기가 안 나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속으론 원전비중을 프랑스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을 만도 한데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문제라며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것 같다. 에너지 리더십은 어디로 갔는지….
정부만 탓하려는 게 아니다. 에너지는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한번 왜곡되면 바로잡기가 정말 어렵다. 당장 좋은 게 좋다는 기업과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적이다. 시민·환경단체의 대안없는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공범이다. 똑같은 고유가도 준비된 국가와 준비 안된 국가에 대한 충격이 같을 수 없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이유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