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 계열사에 속하는 A사의 오너 형제들 중 한 명인 B씨는 요즘 회사의 주가 동향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주가가 가장 낮은 때를 골라 보유 주식을 자녀에게 증여하기 위해서다.

목적은 두 가지.실질적인 세금부담을 낮추는 것과 지분율 하락을 최소화하는 것.주가가 쌀 때 증여한 뒤 세금을 분할납부하는 기간(3년) 중에 주가가 많이 올라주면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실제 2003년 주식물납을 포함해 총 1338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던 대한전선의 고(故) 설원량 회장 유족들의 경우 주당 6000원대에 상속세가 결정됐지만 실제 물납은 1만5000∼2만원 선에 이뤄져 예상보다 많은 지분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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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었다.

고 설 회장은 수영 도중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을 사전에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주가가 만약 반대로 움직였더라면 큰 낭패를 봤을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대한전선의 사례를 지켜본 B씨는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실적을 줄이거나 사업을 방만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절반의 재산을 상속·증여세로 내놓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기업인들은 한푼의 세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온 게 사실이다.

2003년 말 상속세제에 '조세 포괄주의'원칙(상속·증여로 발생한 모든 경제적 이익을 대상으로 과세하는 원칙)이 도입되기 전까지 많은 기업들이 나름대로 마련한 절세방안으로 경영권 승계를 시도했다.

세법에 과세대상으로 규정되지 않았던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발행하거나 오너가 대주주로 있는 비(非)상장사를 그룹 차원에서 중점 육성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들은 '편법 상속'이라는 이유로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은 뒤 조세 포괄주의의 포위망에 갇혀버렸다.

상장 대기업들로서는 A사의 B씨처럼 절묘한 타이밍에 주식을 상속하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주가 조작에 나서지 않는 이상 미래 주가의 움직임을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비상장 중소기업의 기업주는 물납제도를 적극 활용해 세금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는 선에서 주식을 납부한 뒤 이 주식이 공매절차에 들어가면 싼 값에 되사오는 방식이다.

캠코 관계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비상장 주식은 입찰에 부쳐봤자 유찰되기 십상"이라며 "여러 차례 낙찰돼 가격이 떨어지면 원래 주인이었던 기업인 가족들이 되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 제도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소문이 많아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기업인들에겐 흔치 않은 경우지만 미술품이나 보석 같은 실물자산을 이용해 절세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품을 사고 팔 때 부동산과 달리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또 미술품은 토지나 건물이 아니므로 재산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특히 가치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상속·증여시 절세수단으로 이용하기가 용이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해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고가의 보석 역시 마찬가지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한때 로또 복권도 명동 사채시장 주변에서 '절세형 상품'으로 거론된 적이 있다.

상속받은 돈으로 복권을 사들이면 자금출처로 활용하면서 상속 규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또에도 최고 33%의 세금이 부과되고 실제 당첨자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 세무사는 "실제 고객들에게 자문을 해보면 '탈세'와 '절세'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느낌이 든다"며 "하지만 생산재원으로 사용돼야 할 기업자산이 미술품이나 보석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들도 세금은 정당하게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상속·증여세를 낸 뒤 기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경우에는 묘안을 찾는 기업인도 더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조일훈.김동윤.유창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