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자동차업체의 2차 협력업체인 A사 J사장은 요즘 극심한 불면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두 달 전 모 기업의 1차 협력업체인 B사로부터 "7월부터 납품을 받지 않겠다"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은 뒤부터다.

지난 10년간 A사로부터 자동차용 전자부품을 납품받아온 B사는 2년 전 A사와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중국에 세웠고,공장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자 "중국공장 생산량을 늘려 자체 조달하는 게 40% 정도 싸다"며 A사에 거래 단절을 통보했다.

졸지에 연매출 40억원짜리 회사를 날리게 된 J사장은 "살려달라"며 B사에 매달려보기도 하고,정부 관련 부처에 찾아가 하소연도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그동안 신차가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설비투자를 하고 납품단가 인하 요구도 최대한 들어줬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며 "참여정부 들어 기업간 상생경영 구호는 높지만 2,3차 협력업체에는 공허한 메아리로밖에 안 들린다"고 말했다.

실제 24일로 예정된 청와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를 앞두고 대기업들이 앞다퉈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지만,정작 도움이 필요한 2·3차 협력업체들은 '상생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대기업들이 내놓고 있는 '상생 경영'의 과실은 1차 협력업체에만 몰릴 뿐 2,3차 협력업체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한 실정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도 2,3차 협력업체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실제 현대차의 경우 최근 시행한 '부품업체 긴급 지원 방안'에 따라 381개 1차 협력업체들에 결제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고있지만,1차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4200여 2,3차 협력업체 대부분은 여전히 어음으로 결제받고 있다.

또 향후 5년간 2조6300억원에 달하는 현대차의 연구·개발(R&D) 지원금도 대부분 1차 협력업체의 몫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업체인 C사 대표이사는 "대기업이 1차 협력업체에 혜택을 주면 2,3차로 파급효과가 갈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런 사례는 많지 않다"며 "반면 대기업이 1차 협력업체에 단가 인하 요청을 하면 파장은 2,3차 업체로 가면서 더 악화된다"고 전했다.

전자산업도 1차 협력업체에 비해 2,3차 업체의 고통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원·달러 환율 급락에 따른 손실 보전을 위해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들이 중국산 부품 조달을 늘리면서 물량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4개 대기업의 경우 협력업체 1만5779개사 중 상생경영의 사각지대에 놓인 2,3차 협력업체는 86.1%인 1만3588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