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재 대·중소기업 상생회의요? 관심도 없고 기대도 안 합니다.

어차피 1차 협력업체들을 위한 자리잖아요."(자동차 부품 2차 협력업체 A사장)

중소 2,3차 협력업체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생산비가 10~20% 올랐지만 '환율 폭탄' 탓에 원청기업과 1차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 폭은 오히려 예년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글로벌 소싱을 강화하면서 2,3차 협력업체들로부터 조달받던 단순 부품을 속속 값싼 중국산으로 대체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은 1차 협력업체에 집중돼 있고,정부 정책 역시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의 상생구도 확대에 맞춰져 있다.

2,3차 협력업체들이 참여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혜택은 없고 고통만 분담

자동차부품 2차 협력업체인 H사의 K사장은 1차 하청업체인 D사만 생각하면 울분이 터진다.

평소 모기업의 지원은 독식하면서 모기업이 납품단가 인하를 요청하면 곧바로 2차 협력업체에 전가하기 때문이다.

K사장은 "작년 영업이익률보다 높은 5% 수준의 납품단가 인하요구를 받은 탓에 거래 은행이 이에 대출을 회수하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며 "하지만 D사 의존도가 50%가 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들어줬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업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체들도 기술력 있는 1차 협력업체와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2,3차 협력업체 육성에는 소홀하다.

신생 S그룹의 경우 아예 1차 협력업체 중심으로 74개사를 선정,'S 멤버스'란 이름을 달아 집중 지원하고 있으며,기계업체인 D사도 1차 협력업체 210개사에 '올 인'하고 있다.


○'사느냐,죽느냐' 기로에

최근 몇 년 새 계속된 원자재값 인상과 글로벌 소싱 확대는 2,3차 협력업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주요 중소기업들의 제조원가는 그해 1월에 비해 평균 10.1%나 상승했다.

장윤성 기협중앙회 과장은 "원자재가격이 줄곧 상승추세였던 만큼 제조원가가 1년 만에 20% 이상 늘어난 곳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1차 협력업체들이 거래처를 중국으로 옮기거나 2차 협력업체들에 중국 수준으로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 가전회사의 2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중국과 가격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R&D(연구·개발) 및 시설 확충에 돈을 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투자 유보는 2,3차 협력업체들을 갈수록 영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직접지원에는 한계

재계에선 2,3차 협력업체들의 사정이 딱해도 대기업이 직접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2,3차 협력업체 수가 워낙 많은 데다 각 기업에 대한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각사마다 수천개에 달하는 2,3차 협력업체를 모두 지원하기엔 자금이 부족하고 유망업체만 선별해 지원하기엔 근거 자료가 없다"며 "그렇다고 대기업이 1차 협력업체에 2,3차업체 지원을 강요할 경우 자칫 '경영 간섭' 논란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무턱대고 지원하기보다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2,3차 협력업체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각종 불공정 거래는 대기업-1차협력업체보다는 1차-2,3차 협력업체 간 거래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며 "일단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불공정 하도급거래 감시 및 규제 대상을 현재보다 넓혀 2,3차 협력업체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물품대금 결제부터 원활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홍열·오상헌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