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국제석유시장에서 불길한 조짐이 감지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에너지 위기라고 규정짓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석유값의 상승은 금을 비롯한 다른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석유 가격만 이상 급등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에너지 위기가 아니라 '머니(money) 위기',즉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봐야 한다.

원자재값 상승의 책임을 특정 국가나 세력에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도 홀로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릴 힘을 갖고 있지 않다.

투기세력도 세계 원자재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는 없다.

오히려 책임은 그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미국 달러화에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러화의 책임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달러화 가치의 측정 기준이 금이라는 것이 간과돼 왔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달러화 가치를 논할 때 달러화를 외국 화폐와 비교할 뿐 금을 비교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언론들도 금값이 오른다고 보도할 때 "금 시세가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금값 상승은 달러화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별로 지적하지 않았다.

그만큼 금과 달러화의 연관성은 관심권 밖에 머물렀던 것이다.

하지만 금과 달러화가 원자재 가격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쉽게 입증할 수 있다.

금의 달러화 표시 가격이 오르면 석유와 다른 원자재의 달러화 표시 가격도 덩달아 인상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하지만 이는 명목 가격일 뿐이다.

지난 40년 동안의 유가 그래프를 그려보면 이런 사정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그래프는 달러화 가치의 측정 기준인 금의 가격 변화를 반영한 실질 가격을 기준으로 그려야 한다.

이렇게 작성된 그래프를 살펴보면 석유의 실질 가격은 지난해 말 절정에 달한 뒤 줄곧 하락하고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달러화로 표시되는 석유값이 오르는 속도보다 금으로 따진 달러화 가치의 하락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목 가격의 상승률보다 실질 가격의 하락률이 더 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현 단계는 에너지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심하다가 진정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은 석유값 상승은 물론 인플레이션,금리 상승,불황 등 각종 경제적 어려움을 미리 알려주는 믿을 만한 예언자이다.

에너지 위기를 우려해 석유 가격의 동향에만 신경을 집중하기 보다는 금과 이에 연동된 달러화 가치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리=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


◇이 글은 투자컨설팅회사인 웨인라이트의 데이비드 랜슨 사장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Gold and Black Gold'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