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

19세기 말,영국의 제임스 브라이스는 미국을 돌아보고 "연방제는 무궁무진한 정책 실험실"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이 발전을 거듭하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인 주(州)정부가 새로운 정책들을 창안해 내고 정책들이 실효성이 있을 때는 다른 주정부와 중앙정부가 이들을 채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방자치제도는 "정책 혁신의 보고(寶庫)"라는 지적이다.

그의 지적은 5·31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최근 들어 우리의 지자체들도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창의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재정 운영의 전범(典範)을 제시해줬다.

원가분석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계약심사제를 강화하는 등 기업의 경영 기법을 도입해서 재정 지출 규모를 혁신적으로 줄였다.

그 결과 지난해의 경우 지출 절감액 규모는 5800억원에 달했다.

중앙정부는 방만한 예산 운영으로 국채를 산더미처럼 늘렸지만 서울시는 지난 3년 동안 약 3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줄일 수 있었다.

광주시는 '정치가들은 반(反)기업 정서의 원흉'이라는 편견을 뒤흔들었다. 시의회는 지난해 '광주시 기업인 예우 및 기업활동 촉진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는 창업 활동이나 판매 기술 인력양성 등을 지원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규제를 혁파하는 한편 지역 발전에 기여한 기업과 기업인을 기리도록 규정 하고 있다.

시의원들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꿰뚫어 본 것이다.

부산시는 교육 개혁의 모델을 제시했다.

전국에서 가장 교육 만족도가 높은 도시로 선정된 부산.수업을 잘 한다는 교사를 과목별로 6명씩 선발해 그들의 수업을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띄우는 릴레이 공개수업,독후감을 인터넷에 올릴 경우 도서상품권을 주는 독서인증제,불우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보충학습제 등 학생,학부모,교사들이 내놓은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채택한 덕분이었다.

'공교육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론을 뒤집은 것이다.

이들 모두는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두 가지 아쉬운 점이 두드러진다.

첫째,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자체의 정책 혁신 노력을 한층 더 북돋워 주려는 움직임이 없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8 대 2에 머물러 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지방정부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된다는 '지방정부 심판론'이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래서는 지방자치제장들이 재량권을 갖고 참신한 정책 혁신을 하기가 힘들다.

둘째,중앙정부가 지자체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취임 직후부터 참여정부는 각종 위원회를 신설해가면서 행정 및 정책 혁신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 탁상공론에 그쳤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의 사례들을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갈등만 초래했다.

상대적으로 지방의 정책 혁신 사례를 연구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왔다.

1988년 개정 지방자치법 통과와 1991년 지방의회의 출범,그리고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 직선제로 본격화된 지방자치제.어느새 우리의 지자제는 미국의 연방제와 같이 정책 혁신의 보고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한 지자체에 의해 '혁신'된 정책이 다른 지자체들은 물론이고 중앙정부로 '확산'되는 메커니즘을 마련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앙정부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지자체를 무시하거나 그 위에 군림하려 하기 보다는 지자체의 성공사례를 보고 듣고 배우려는 태도가 절실하다.

그렇게 된다면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場)'으로서 뿐 아니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