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재단법인을 설립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단법인(stichting,스티흐팅)을 세우고 여기에 공격받는 회사 지분을 넘긴 다음,법인 내 특별 의결권 등을 통해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세계 최대 철강회사 미탈스틸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유럽 철강업체 아르셀로가 최근 네덜란드에 스티흐팅을 설립,미탈의 의욕을 꺾어놓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회사들이 적극 활용

미탈스틸은 아르셀로 인수에 성공할 경우 반독점 규제를 피하고 아르셀로 인수 자금을 대기 위해 아르셀로의 캐나다 자회사인 도파스코를 매각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아르셀로는 이에 대응,지난달 초 네덜란드에 스티흐팅을 세우고 도파스코 주식을 이곳으로 넘기는 결정을 내렸다.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난 미탈은 변호사들에게 스티흐팅 문제를 풀라고 '비상령'을 내렸지만 묘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아르셀로 이전에는 구치와 로담코가 스티흐팅을 적극 활용했다.

1997년 명품회사들의 합병이 붐을 이룰 당시 구치는 스티흐팅을 만들어 LVMH(루이뷔통 브랜드 보유 회사)의 인수 시도를 좌절시켰다.

2001년에는 프랑스 부동산회사인 로담코 북미법인이 호주 웨스트필드그룹의 적대적 인수 시도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스티흐팅을 이용했다.

로담코의 M&A 방어 노력은 결국 실패했지만 구치에 이은 스티흐팅 설립 시도여서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세계적 조립식 가구업체인 이케아는 아예 세계 각국 매장을 네덜란드 스티흐팅인 'INGKA' 소유로 만들어 절세와 경영권 안정을 꾀하고 있다.

◆스티흐팅 옹호나선 EU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네덜란드의 스티흐팅은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엔 프랑스 등 다른 나라 기업들도 잇달아 네덜란드에 스티흐팅을 설립하고 있다.

인가 요청서와 이사회만 잘 꾸리면 쉽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은 스티흐팅을 활용한 방어 수단이 업계의 합병과 자유경쟁을 위축시킨다며 우려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지난 20일부터 발효된 EU의 새 기업인수법에선 결국 스티흐팅과 같은 방어 수단을 허용했다.

다른 나라 기업으로부터 M&A 위협에 직면한 유럽 기업이 늘어나면서 회원국들이 스티흐팅 등의 수단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에선 △1주로도 주요 의사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황금주 △저가로 신주를 발행해 공격적 인수 의지를 꺾어놓는 독약처방(포이즌필) 등이,미국에선 최고경영자 등에게 거액의 퇴직금이나 스톡옵션을 보장해 M&A를 부담스럽게 하는 황금낙하산 등이 주요 M&A 방어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스티흐팅 설립도 주목받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