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인 PCA생명 한국법인 빌 라일 사장.지난해 12월 부임하자마자 "5년 이내 외국계 생보사 중 1위가 되겠다"고 밝혔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였다.

당시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0.7% 선."좀 무리한 목표 아니냐"고 묻자 "두고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 부임 직전 말레이시아 PCA생명을 해마다 30% 이상 신장시킨 자신감의 표현이겠지만 결코 뜬금없는 소리만은 아니다.

국내 생보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의 결과였다.

그는 생보시장의 판매채널이 급속히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었다.

방카슈랑스,인터넷,전화에 이어 심지어 홈쇼핑TV 채널까지 보험 판매 창구로 등장하는 게 요즘이다.


외국계는 이 같은 신채널을 놓치지 않고 선제 공략하고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를 통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2003년 9월 도입된 이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한 회사는 단연 AIG생명이 꼽힌다.

2003년 8월 1.2%에 불과했던 시장점유율은 2006년 2월 2.9%로 뛰어올랐다.

매출 가운데 방카슈랑스 채널의 비중은 34%로 높다.

은행 이용고객의 니즈를 겨냥,일시납으로 가입할 수 있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내놓은 게 먹혀들었던 것이다.

지난해에는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타면서 변액보험이 히트를 쳤다.

가히 '투자형 보험' 바람이 불었다고 할 만하다.



그러자 국내 생보사들은 너도나도 다양한 변액상품을 내놓았다.

변액종신,변액연금,변액CI….하지만 상당수 변액보험 가입자는 외국계를 택했다.

'변액보험=선진보험=외국계 상품'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은연중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변액보험 유행을 주도적으로 이끈 회사는 미국계 메트라이프생명.2003년 7월부터 선보인 이 회사의 변액유니버설 보험은 판매 비중이 46%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라이나생명은 TM(텔레마케팅)분야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이슈로 등장하자 외국계는 연금보험 등 생존보장에 초점을 맞춘 신상품에 주력하고 있다.

PCA생명이 적극 공략하는 은퇴보험시장이 그 중 하나다.

라일 사장이 '5년 내 1위'를 자신한 것도 바로 은퇴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외국계는 또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구조의 상품으로 시장을 파고든다.

전화나 홈쇼핑을 통해 판매되는 암보험에서 '최초 암진단시 ㅇㅇㅇ만원 지급'처럼 보장내용을 단순하게 표현한다.

'최초 암진단시 얼마,암 관련 입원시 얼마,최초 암수술시 얼마' 하는 형태의 복잡한 국내 생보사들 광고 문구와는 크게 차이난다.

물론 계약대상자를 고르는 일은 까다롭다.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저위험 집단을 타깃으로 보험을 판매한다.

그러다 보니 계약건당 평균 보험 가입금액이 3300만원에 이른다.

국내사(2000만원 수준)보다 훨씬 높다.

사고 위험은 낮고 평균 가입금액은 큰 만큼 이익도 많다.

이는 다시 공격영업을 가능하게 한다.

자산운용 측면에서도 매우 보수적이다.

국공채 보유 비율이 전체 운용자산의 70%에 육박한다.

매우 안정적인 운용이다.

반면 일반대출과 주식보유 비율은 1%대에 불과하다.

고수익이 보장돼 국내사들이 좋아하는 주택담보대출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무관심하다.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보험계약(부채)의 장기 속성에 맞게 자산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작년 3월 말 현재 외국계의 위험가중자산 비율은 22.9% 선이다.

국내 생보사(대형사 44.0%,중·소형사 48.3%)들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얘기다.

외국계의 이 같은 안정적 이미지는 요즘처럼 보험 환경이 급변하는 때일수록 더 먹혀들 수밖에 없다.

외국계의 성장세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