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좋은 작가 없어요?"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갤러리 대표들의 고민섞인 질문이다.

갑작스럽게 불과 5~10년여 사이에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나타나는 '작가난' 현상이다.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연간 5000명이 넘는 예비작가들이 배출되고,수만명을 헤아리는 전국의 기성작가들이 활동하지만 막상 국제적인 아트페어나 전시회를 기획하려면 그리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만큼 작품들의 국제적 감각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작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상업화랑이 국제무대에 진출하려면 딜러들 스스로가 변해야 하는데 안목과 기획력이 답답하다고 지적한다.

또 작가 후원시스템 역시 단견적이고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항변한다.

에리히 프롬은 21세기가 시장지향형 인간이 돼가며,심지어는 학문 예술 인격까지도 시장형으로 바뀌어갈 것이라고 예견했듯이 드디어 우리나라의 미술계에도 시장의 위력이 핵심적 화두로 등장하는 시대가 됐다.

이른바 스타급 작가란 비엔날레나 뮤지엄 위주의 평가만이 아니라 경매나 아트페어의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그 위상을 빛낼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시장 형성을 위해서는 딜러,작가,컬렉터 모두가 준비해야 할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연간 5000명 이상의 예비작가들을 배출하는 대학교육에서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혁신,대사회적인 기획력과 경영개념 도입은 프로급 작가를 양성하는 조건으로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중국이나 영국처럼 이미 유행되는 뉴욕중심의 흐름을 탈피해 세계사조를 독자적으로 리드할 수 있는 두둑한 배짱과 자신의 철학을 과감히 표출해가는 동시대 한국작가들의 정체성 또한 미술시장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된다.

다음으로는 한국미술시장을 읽을 수 있는 로드맵 작성이 절실하다.

이는 작품판매의 흐름과 주요 동향분석,향후 전망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통계와 지표를 서비스하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컬렉터층을 유입해야만 빠른 속도의 시장 확산이 가능하다.

그 대안으로서 미술시장 DB 구축과 정보공개프로그램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고,이미 설립된 고미술협회 화랑협회 감정가협회 시가감정연구소 등의 단체를 간접지원함으로서 가격구조와 유통현황,진위감정까지도 선별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차원으로 진전돼야 한다.

또한 현재 경매로 쏠리고 있는 미술시장의 흐름을 다극화해 시장의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로 간주되는 갤러리들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지역 갤러리들의 축제나 네트워크 연결로 시장확산에 대한 대안 모색,공동전시기획 등 중소 규모 갤러리들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다양한 탈출구가 필요하다.

나아가 최근 우리 갤러리들의 해외진출이 중국과 잘 알려진 중대형 아트페어들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형 아트페어만 해도 틈새시장을 노리고 파격적인 아이디어와 신선한 감각으로 등장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아트페어들이 즐비하다.

시카고의 노바아트페어나 두바이의 걸프아트페어,뉴욕의 어포드블아트페어 등은 런던의 프리즈아트페어를 필두로 무시할 수 없는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신진 갤러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각예술은 단숨에 각국의 언어를 초월한다.

그만큼 국경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는 세계적 스타를 배출하면서 문화전쟁을 통한 미술강국의 위상을 정립함으로써 진정한 문화 향유와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