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수도 리마의 바닷가인 코스타 베르데.깎아지른 절벽 위에 초현대식 식당가가 서 있다.

평일 점심 때인 데도 사람이 붐빈다.

주로 백인들이다.

밥값이 만만치 않다보니 잘 사는 백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훌리아라는 산마르코대 학생(20·여)은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망설이지도 않고 "가르시아"라고 답한다.

오는 6월4일 실시되는 대통령 결선투표에 올라간 2명 중 1명으로 상대적으로 온건주의자다.

점심을 먹고 리마에서 남쪽으로 뻗은 '파나메리카나 수르'라는 고속도로를 탔다.

10분도 채 안돼 풀 한 포기 없는 거대한 사막산이 나타난다.

사막산 중턱엔 끝없는 판자촌이 형성돼 있다.

자동차에서 물을 공급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동네다.



부근에서 잡화점을 하는 안토니오씨(43)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말라"라고 손을 치켜 세운다.

자원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좌파후보다.

페루는 대통령선거 열기에 빠져 있다.

후보는 앨런 가르시아와 오얀타 우말라.백인에 가까운 가르시아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당시 물가상승률이 7500%에 달할 정도로 경제를 파탄낸 '실패한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소속 정당의 탄탄한 조직력과 '최악(最惡)인 우말라보다는 차악(次惡)인 가르시아가 낫다'고 생각하는 중산층의 지지를 업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우말라에 대한 공개적 지지표명이 역으로 부동층을 가르시아편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맞서는 우말라는 원주민계 혈통.자원국유화와 함께 이미 체결한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주장하는 좌파 민족주의자다.

주한 페루대사관에서 무관을 지내기도 한 군인출신으로 원주민과 50%에 달하는 빈민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자원국유화에 대한 두 후보의 시각은 차이가 난다.

우말라는 '베네수엘라식 국유화'를 주장한다.

우말라의 경제보좌관인 펠릭스 히메네스는 "외국기업들이 유전을 비롯한 국가기간산업을 차지하면서 독점 등 여러 가지 폐혜를 낳고 있다"며 "에너지 항만 항공 등 기간산업 운영에 국가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다고 외국기업 지분을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고 기존 계약을 재검토,국가와 외국기업이 같이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나오는 돈을 빈부격차 해소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가르시아도 자원개발 계약에 대해선 검토해볼 여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강도가 훨씬 약하다.

그러다보니 외국기업은 물론 페루기업들도 가르시아편에 서 있다.

유전 및 광물 투자기업들의 모임인 '광업 및 에너지협회'의 카롤스 솔라 회장은 "우말라가 당선되면 페루는 암울했던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페루는 베네수엘라와 달리 원유나 가스의 매장량이 많지 않은 만큼 국유화가 진행되면 외국인투자자는 다 철수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욱이 페루 헌법엔 '계약은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하지 않고는 바꿀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다보니 자원국유화 논쟁은 위헌논쟁으로까지 번져 더욱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김종경 KOTRA 리마무역관장은 "페루는 베네수엘라와 다른 만큼 우말라가 당선돼도 극단적인 국유화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김 관장은 그러나 "가르시아도 일부 자원계약에 대해선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누가 되더라도 자원정책에 변화가 올 전망"이라며 "한국기업들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수출액(170억달러)의 56%가 광물자원인 페루로서는 '베네수엘라식으로 가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리마(페루)=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