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객들에게 '멀티애셋펀드'라는 신상품을 권유했던 신한은행의 한 프라이빗 뱅커(PB)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고객 반응에 놀랐다.

그는 "코스피200 닛케이225 등 주가지수와 일본 부동산지수,알루미늄 등 실물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상품"이라며 "연 10%가량의 수익을 예상한다고 소개했는데 하루 만에 수억원의 '뭉칫돈'을 들고 온 고객이 수십 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부터 1년제 예금에 연 5.0%의 금리를 주는 특판 행사를 7000억원 한도로 진행 중인 외환은행의 경우 26일까지 10영업일 동안 6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하루 평균 600억원이 몰린 셈이다.



4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시중 부동자금이 한시적으로 판매되는 '스폿(spot)형' 금융상품에 '게릴라 식'으로 몰리고 있다.

부동산 버블 논란과 주식시장 약세가 이어지면서 부동 자금들이 뚜렷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탓이다.

부동 자금의 공략 대상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상품은 은행 특판예금,저축은행 특판 및 정기예금,저축은행 후순위 채권,안정성을 중시하는 펀드 상품 등이다.

지난 3월 이후 연 5%대의 고금리를 제공하는 특판예금 판매 행사를 벌이고 있는 신한 하나 외환 산업은행 등 4개 은행에는 약 3개월 만에 7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몰려들었다.

저축은행들이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지점 오픈을 기념해 내놓은 연 5.5∼5.8%짜리 특판예금 역시 판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매진되고 있다.

경기저축은행이 구리점을 개설하면서 판매한 연 5.8% 특판예금의 경우 한도 금액 300억원 가운데 200억원이 시판 사흘 만에 소진됐고 나머지 100억원도 10영업일 이내에 모두 팔렸다.

이 같은 초고속 매진 행렬에 힘입어 전국 110개 저축은행의 총 수신은 2004년 7월 말 30조원을 돌파한 이후 1년10개월 만인 지난 4월 말 40조451억원을 기록,40조원을 넘어섰다.

저축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발행하고 있는 후순위채에도 거액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만기 5년3개월∼5년5개월짜리 후순위채를 연 8.5∼9.3% 금리로 선보인 HK 제일 한국저축은행 등의 후순위 채권 550억원어치는 투자 위험도가 비교적 높음에도 불구하고 판매 이틀 만에 모두 소진됐다.

시중 은행들이 재력가들을 대상으로 사모 형태로 팔고 있는 '틈새 펀드'들도 인기다.

하나은행이 지난달 선보인 뮤지컬 펀드는 시판된 지 1주일 만에 판매 한도인 12억원이 모두 나갔다.

하나은행이 작년에 내놨던 뮤지컬 '아이다' 펀드가 연 7∼8%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린 게 인기 배경이 됐다.

시중 자금의 이 같은 흐름 변화는 최근 주식 및 부동산이라는 양대 투자시장의 급랭 현상에 따른 것이다.

보유 자산의 상당 부분을 리스크가 큰 상품에 넣어뒀던 투자자들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안정형 자산 위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은행 분당 파크뷰 지점의 강우신 PB팀장은 "최근 거액 자산가들이 상당액의 주식과 부동산을 처분했고 그 여유 자금이 안정적 성향의 스폿형 틈새 상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조원 넘게 풀린 토지 보상금 역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한 시중은행 강남PB센터 팀장은 "최근 PB센터에 새롭게 유입되는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지방에서 토지를 수용당해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대부분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대토(代土)를 구입할 자금을 제외한 나머지 가운데 상당수를 1년짜리 정기예금 이자보다 1.5∼2배 수준의 수익이 기대되는 안정적인 금융상품에 넣어두고 있다"고 들려줬다.

"금융 소비자들이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좇아 틈새 금융상품에 게릴라 식으로 투자하는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