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도 빛났지만 행운도 따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올해 들어 세번째 치러진 한국선수끼리 연장전에서 한희원(28.휠라코리아)은 이미나(25.KTF)를 누른 것은 집중력에서 앞선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어진 행운 덕도 적지 않았다.

한희원은 이미나가 단독 선두로 경기를 끝냈을 때 17, 18번홀을 남기고 2타차로 뒤져 있어 사실상 역전 우승은 어려웠다.

남은 2개홀에서 모두 버디를 뽑아내야 하는데 이미나가 우승 인터뷰나 다름없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을 때 17번홀에서 친 두번째샷은 홀을 훌쩍 지나가 7m 내리막 퍼트를 남기고 있었다.

한희원이 살며시 굴린 버디 퍼트는 힘없이 경사를 타고 내려가다가 컵 언저리에 살짝 걸리더니 거짓말처럼 홀 안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아직 1타가 부족했다.

반드시 버디를 잡아내야만 연장전에 합류할 수 있기에 아직도 한희원의 역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한희원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18번홀(파4) 페어웨이 한 가운데를 가른 티샷에 이어 두번째샷은 홀 1m 옆에 붙었다.

2개홀을 남기고 2타차 열세를 따라 붙은 승부 근성과 집중력은 챔피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연장전에서도 한희원의 집중력은 이미나를 앞섰다.

18번홀에서 치른 첫 연장에서 한희원은 두번째샷이 그린 왼쪽 벙커에 빠졌지만 가뿐하게 건져 올렸고 1.2m 짜리 쉽지 않는 파퍼트를 집어넣어 패전 위기를 벗어났다.

세번째 연장과 네번째 연장에서는 행운까지 곁들여졌다.

18번홀에서 치른 세번째 연장에서 한희원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숲으로 향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를 맞힌 볼은 놀랍게도 페어웨이로 굴러 들어왔다.

이미나의 티샷도 같은 방향으로 날았지만 숲속에 그대로 떨어져 희비가 엇갈렸다.

이미나가 어렵사리 파를 지켜내 승부는 네번째 연장으로 넘어갔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한희원에게 기울었다.

이 승부처에서도 한희원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숲속으로 들어갈 뻔 했지만 살짝 나뭇가지를 스친 볼은 그린 공략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위치에 떨어졌다.

두번이나 계속된 한희원의 행운에 기가 질린 이미나는 두번째샷을 그린 오른쪽 러프로 날려보냈고 홀인을 노린 공격적인 칩샷마저 3m나 지나가고 말았다.

이미나의 칩샷이 길어 퍼팅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도 한희원에게는 행운이었다.

이미나가 짧은 파퍼트를 남겼다면 먼저 버디 퍼트를 해야 했던 한희원은 반드시 넣어야만 우승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받았겠지만 이미나가 먼저 파퍼트를 실패한 뒤에야 버디 퍼트에 나선 한희원은 편안하게 2퍼트로 우승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동안 3차례나 연장 승부에 울었던 한희원은 정규 라운드 막판 빛나는 집중력에 연장 승부에서도 끈질긴 근성을 발휘했지만 이어진 행운까지 겹치며 통산 5승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한편 한국에서 활약할 때 4승 가운데 3승을 연장전에서 따냈고 지난 2월 필즈오픈 때도 최종일 65타의 맹타를 쳐 공동선두에 나선 뒤 연장 우승을 차지해 '역전의 명수'와 '연장 불패'의 뒷심을 자랑하던 이미나는 공격적 플레이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