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세계경영'의 기치 아래 전 세계를 누비며 수출입국의 선봉에 섰던 그였지만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선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구급차량에 실려온 김 전 회장은 손목에 링거를 꽂은 채 환자복 차림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개흉 수술 등 잇따른 수술과 협심증 등 지병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탓이다.

이미 죄값은 충분히 치른 셈이다.

그러나 법원은 그의 과오를 단죄했다.

검찰측 주장은 대부분 수용한 반면 김 전 회장의 입장은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이 작년 6월14일 5년8개월간의 해외유랑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을 때 이 같은 수모는 각오했을 것이다.

지난번 최후진술에서 밝혔듯 해외시장 개척 등 대우가 걸었던 길은 한국 경제를 위한 장정이었지만 마지막에 잘못 채워진 '운명의 단추'로 인한 책임은 결코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원의 선처를 기대하며 방청석을 가득 메웠던 대우그룹의 전직 임원들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전직 임원은 "이번 판결은 김 회장 본인의 잘잘못뿐아니라 성장주의와 분배주의에 대한 논란을 평가받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며 "성장론자인 김 회장의 고심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경영의 방향은 옳아"

'세계경영'으로 유명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기업인도 드물다.

한쪽에선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의 화신'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사기대출 사건의 주범이자 실패한 기업인의 전형'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재평가론 또는 동정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그가 사심없이 일만 했던 경영자라는 사실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김 전 회장은 1967년 3월,31세의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대우그룹은 자동차 전자 조선 기계 등의 막강 제조군단을 거느린 재계 2위그룹으로 도약했다.

김 전 회장은 성장을 위해 수많은 부실 기업들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옥포 조선소와 부평공장 근로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는 등 당시 오너 경영자로는 흔치 않았던 몰입과 헌신을 보여줬다.

1990년대 중반 자동차 조선 종합상사 등 수출 주력 계열사들을 이끌고 전 세계에 400여개의 법인을 구축하면서 김우중 신화는 거의 절정에 이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해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이 사실인 만큼 선처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것은 김 전 회장의 활동방식이 그만큼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음을 입증한다.

1995년 학생운동을 하다 대우그룹에 입사했던 김윤 세계경영포럼 대표는 "김 전 회장은 (경영자로서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가 추구했던 세계경영의 방향 자체는 옳았다"고 강조했다.

요즘 삼성이나 LG가 동유럽에 이어 브라질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왕성한 글로벌 경영활동도 따지고 보면 과거 대우가 시도했던 '세계경영'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이 한때 국내 2위의 대기업을 이끌면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점은 재판부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지난 반세기 경제 성장의 주역이며 남다른 열정과 근면성으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준 기업인이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김 전 회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것은 김 전 회장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점 외에 이 같은 공로가 참작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위험한 곡예 일삼던 도박사"

김 전 회장을 비판하는 진영에선 '세계경영이란 이름의 도박을 벌인 외줄타기 곡예비행사'(배준호 한신대 교수)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김우중식 경영의 인과응보적 결말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대우가 국내 경제에 끼친 손실이 천문학적이고 김우중식 경영방식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고 힐난한다.

분식회계를 이용한 탈법적 차입경영은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30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했고 수십만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들도 엄청난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또 세계경영의 실체는 황제식 선단경영에 의존한 '빚더미 경영'에 불과하며 대우의 세계화는 기술과 품질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1970년대의 밀어내기식 수출 행태를 답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병일·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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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회장 일지>

△1999년 8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
△1999년 10월 김우중 대우 회장, 중국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뒤 잠적
△2001년 11월 프랑스 인터폴,김 전 회장 프랑스 국적 취득해 독일에서 치료중 발표
△2005년 3월 법무부 1999년 출국 이후 귀국한 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힘
△2005년 4월 김 전 회장,베트남에서 목격됨 / 대법원,대우그룹 임원 7명에 23조358억원의 추징금 선고 /김우중 전 회장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고 밝힘
△2005년 5월 법무부,이성원 전 대우 전무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관련자 4명 특별복권 조치
△2005년 6월 김 전 회장 귀국
△2005년 7월 검찰, 김 전 회장 구속기소
△2005년 8월 김 전 회장 건강악화로 구속집행정지, 신촌세브란스병원 입원 / 법원, 김 전 회장 첫 공판 시작
△2006년 5월 검찰, 김 전 회장에 징역 15년 추징금 23조358억원 구형
△2006년 5월 30일 법원, 징역 10년,추징금 21조4484억원,벌금 1000만원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