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철 <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jcoh@kcta.or.kr >

당나라 대시인 '두보'는 꽃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지만,남자의 눈물에 대한 우리사회의 대체적인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공중화장실 표어도 따지고 보면 남자란 무릇 눈물을 흘려서는 안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대중가요에서도 남자의 눈물은 감추거나 삼키는 대상이기에 빗속에서 떠나는 애인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어쩔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눈에 들어간 빗물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유난히 자주 울었던 것 같다.

혼자 넘어져서 울고,친구하고 싸우다 울고,책가방 잃어버려 울고….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눈물이 그칠 줄 모른다는데 있다.

신혼 초에 아내와 함께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이혼한 부부가 법정투쟁을 벌이는 내용의 가족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흐르는 눈물은 어둠속에서 적당히 감출 수 있었으나 라스트신에서 또다시 나오는 눈물은 주체하기 어려웠다.

극장 안에 불이 켜지면 아내에게 눈물 흘린 사실이 들통 나고,신랑이 나약하다고 생각할까봐 극장 천장을 뚫어져라 몇 번씩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꽤 단련이 됐을 성 싶건만 약간의 감동적인 장면만 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일은 50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여전하며 그 대상은 영화이건 TV다큐이건 스포츠 장면이건 가리지 않는다.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읽을 때 눈물이 나더니 얼마 후 대학로에서 같은 제목의 연극을 보는 중에 또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꽤 위안이 되는 뉴스를 접하게 됐다.

수많은 영화를 통해 강인한 남성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미국의 원로배우 찰턴 헤스턴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시도 때도 없이 주저앉은 채 펑펑 운다는 것이다.

평생동안 꾹꾹 참았던 사나이 눈물을 병상에서 한꺼번에 다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유학을 떠나는 딸애를 전송하고 집에 돌아와 딸애의 빈 방을 들여다 보는 순간 또 눈물이 왈칵 나 정말 많이도 울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그 애가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됐다.

딸을 시집보내는 서운함에 못이겨 결혼식장에서 중인환시리에 눈물을 계속 훔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지금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눈물 흘리지 않는 연습을 열심히 하든지 아니면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자에게도 때로는 외롭고,힘들고,서글프고,억울한 때가 적지 않다.

이런 때는 눈물을 억지로 참거나 남몰래 눈물을 훔칠 것이 아니라 당당히 눈물을 흘려도 되지 않겠는가.

예수님도 제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고,난중일기를 보면 성웅 이순신도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시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