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금융사기극을 다룬 에로틱스릴러 '모노폴리'(감독 이항배)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비록 연기가 허점 투성이고 감동은 적지만 독특한 소재와 마지막 반전이 뛰어나다.

전국 1억여개 계좌에서 5조원이 불법 인출되자 국정원은 용의자로 중앙은행 전산망 보안담당자이자 천재 해커인 경호(양동근)와 그의 섹스파트너 앨리(윤지민)를 체포한다.

그러나 돈은 이미 경호의 친구 존(김성수)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기둥줄거리는 경호와 앨리가 국정원에서 존이란 인물과 사건전모를 진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용의자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구성은 반전(反轉) 영화의 백미 '유주얼 서스펙트'를 연상시킨다.

영화가 막을 내릴 즈음 관객은 기막힌 반전에 잠시 혼란을 겪지만 '그럴 듯한' 두뇌게임이었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영화에는 물질만능주의로 치닫는 현대인의 허상이 투영돼 있다.

주인공들이 즐기는 호화로운 요트여행과 세련된 스포츠카 운전 등에는 상류사회를 향한 욕망을 관객이 대리체험토록 해준다.

전산망 해킹과 전자예금 불법인출 장면 등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의 역기능이 반영돼 있다.

또 이성애와 동성애를 오가는 주인공들의 성(性) 탐닉에는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성 풍속이 담겨 있다.

무한경쟁 시대에 어린이로 돌아가려는 퇴행적인 욕구를 일컫는 '키덜트문화'도 눈길을 끈다.

땅뺏기 놀이인 '모노폴리'게임이나 액션피규어(만화나 영화 속 액션 영웅을 본뜬 모형) 수집 등은 단순히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극의 전개에 중요한 단서구실을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독자적인 생명을 상실한 듯 싶다.

카메라가 살아있는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프레임에 전형적인 인물들을 옮겨놓은 것 같다.

일례로 주인공 양동근은 변신을 꾀했는데도 전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유의 곱슬머리 대신 단정한 생머리와 정장차림으로 등장하지만 어눌한 말투와 수줍은 듯한 성격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앨리역 윤지민도 원래의 팜므파탈 역할을 해내지 못한 채 멋진 몸매를 보여주는데 그치고 만다.

1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