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아파트 단지에는 최근 이색적인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터무니없이 높은 호가를 내세워 단지 밖에 있는 중개업소와만 거래하는 부녀회를 성토하는 내용이다.

이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입점해 있는 10개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제작한 이 플래카드는 문구상으로는 부녀회 간부를 겨냥하고 있지만,담합된 가격으로 매매를 종용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매물을 회수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부녀회 활동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또 이와는 별도의 항의문들이 중개업소 여기저기에 나붙어 있다.

그동안 부녀회의 압박에 눌려 '눈치영업'을 해왔던 중개업소들이 부녀회에 대한 반격에 나선 셈이다.

이 같은 중개업소들의 집단 반발은 정부가 부녀회의 집값 올리기 담합을 시장 질서 교란행위로 간주,과태료 등의 행정조치를 내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4일 "부녀회가 자기 뜻대로 허위 시세를 올리는 중개업소는 '모범업소'로 추천하고 정상 가격으로 거래하는 중개업소는 '악덕업소'로 찍어 매물을 회수해가고 있다"며 "전체 주민에게 부녀회의 부도덕한 활동 실상을 알리기 위해 플래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플래카드 제작은 시작일 뿐"이라며 "특정 업소만 밀어주는 부녀회를 영업방해 혐의로 고소하기 위해 이미 법률 자문까지 마친 상태"라고 주장했다.

A아파트 부녀회는 올초부터 평당 1000만원 수준인 집값을 올리기 위해 평당 1500만원을 하한가로 정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주변 중개업소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이 가격 아래로 거래를 알선하는 중개업소에는 항의 전화,매물 회수,거래 중단 등 '실력 행사'를 통해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평소 부녀회장과 친분이 있는 특정 중개업소에 매물이 집중되면서 주변 중개업소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부녀회를 겨냥한 중개업소들의 반격 움직임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K시 D마을 20여개 중개업소도 지역 내 연합 부녀회를 상대로 '불신임 운동'에 나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연합 부녀회는 D마을의 6개 단지 부녀회가 뭉쳐 결성한 것으로,집값 담합은 물론 정부의 공식 집값 통계로 잡히는 국민은행 시세까지 조작하는 등 조직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어 중개업소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지역 C공인 관계자는 "D마을은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부녀회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동조하는 세입자 및 일부 집주인들과 함께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부녀회 불신임 운동을 벌여 부녀회 횡포에 제동을 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