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경제교육연구소장ㆍ논설위원 >

여론을 비난하는 것은 누구든 제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

겸허하게 수용할 뿐 거기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

일종의 금기다.

좌파 대중독재는 바로 그 금기의 역설 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차용하는 적반하장식 레토릭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다.

5·31 이후 구구한 반성의 말들이 쏟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내심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모습들이다.

여론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조변석개하는 것이어서 한두어 달이면 과거사로 돌아갈지 누가 알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고맙게도 그 점을 잘 지적해 주었다.

정곡을 찌르는 데 있어서는 나무랄 데 없는 판단력을 자랑해 왔던 대통령이다.

그는 '민심의 흐름'이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5·31선거 결과를 압축했다.

'민심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라고 설명까지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는 충고는 차라리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만한 배짱도 없이 대통령을 할 줄 알았는가.

그러니 부디 궁상을 떨지 말고,자중자애할 것이며…!'

아마 노 대통령의 '민심의 흐름'이라는 말은 선거후 쏟아진 허다한 논평 중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언명일지도 모르겠다.

준엄한 심판 따위의 그럴싸한 언어야말로 정치인들의 허망한 수사학이다.

여론이 조작 아니면 흥정의 대상 아니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서 노 대통령의 "선거 한두 번에…"라는 말은 실로 정확한 자기고백이다.

친여 매체를 총동원해왔던 그간의 여론조작 과정을 이 기회에 전면 부인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불과 2년여에 이토록 여론이 뒤집어진다는 것은 차라리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를 90분짜리 축구 응원하듯 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한 골 들어가면 온 천지가 환호로 진동하고 한 골 먹고 나면 온 구장에 한탄소리가 가득하다는 식이다.

지금의 선택이 옳았다면 2년 전의 선택은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2002년에는 노 정권의 허망한 실체를 그토록 몰랐더란 말인지….김대업이다 누구다 하는 몇 사람이면 충분히 뒤엎을 여론이라면 한국인의 평균적 '민주주의 IQ'는 이미 땅바닥을 기는 수준이다.

참여정부가 '참여'란 단어를 붙이면서 시도했던 것이 바로 제도와 질서를 우회하는 일이었고 대중 에너지의 무차별적 분출이었다.

그래서 통제되지 않은 논쟁만 무성해지고 여론은 점차 조작 가능한 양철 냄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여론을 가벼이 보는 것이다. 내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노 대통령의 '민심의 흐름'론은 바로 그 뒤집어진 연애론이다.

실로 황당하고 누가 할 말을 누가 하는지 모를 정도다.

사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내미는 명함에서 당명이 사라진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다.

여당의 누군가가 "이제야 여론을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그것부터가 또 다른 거짓말의 시작이다.

처음부터 포말이었고 그런 포말의 집합을 우리는 얼치기 좌파 아닌 다른 말로 어떻게 부를 것인가.

민노당이 급진세력의 정치 교두보에 불과했다는 것 또한 백일하에 드러났다.

여당의 이탈 세력이 결코 민노당으로 쏟아져 들어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좌파 전선의 조기 몰락이 분명하다.

바람을 집어넣어 몸집을 한껏 부풀려 보였던 허풍선이의 정치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이제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된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당연하겠지만 정책의 변화를 권고하는 말들도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금물이다.

어설픈 동조는 더불어 물귀신이 되자는 데 불과하다.

어떤 정책이든 그것에 걸맞은 제도들의 짜임새 위에서라야 약발이 통하는 법이다.

그래서 낡은 토대를 철거하는 작업이 먼저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