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날 편히 살고 싶다.' '모든 일이 귀찮고 외출하기 싫다.' '온순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다.' '옷은 내 방식대로 입는다.'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다.' '온종일 인터넷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연 수입이 나이의 100만배 이하이다.'

열거한 것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일치한다면 당신은 '하류'적이다. '하류사회(下流社會)'는 일본 사회의 현재를 통렬하게 꼬집는 키워드다. 지난해 9월 같은 이름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올들어서는 일본 전체의 '하류화'를 막기 위한 논의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하류'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의욕'이다. 일할 뜻도 소비할 생각도 없다. 남들과의 의사소통 기술은 물론 생활 능력도 부족하다. 경쟁과 조직생활을 싫어하기 때문에 대기업 사원을 별로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일본에서 '하류' 계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쯤부터.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대졸자들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다.'하류'들은 할 수 없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프리터(freeter:free+arbeiter)족이 됐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제2 베이비붐 때 태어나 비교적 풍요롭게 자랐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불운을 겪은 경우다.거품이 꺼지면서 취업이 어려워졌지만 풍요롭게 자랐기 때문에 신분상승 욕구도 크지 않다. 일 보다는 노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런 하류계층이 늘어가면서 나라 전체가 하류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일본엔 큰 충격이었다.

'하류 사회'의 충격파가 우리 사회에도 큰 것은 우리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국내에서도 비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취업준비만 하는 '직업이 취업준비생'인 사람들의 숫자가 2003년 13만9000명에서 최근에는 29만2000명이 넘어 3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심각한 것은 이런 '하류화'가 기업이나 각종 조직,기관,단체 등 직장사회에도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일이나 큰 일을 벌이려 하지 않는 '무의욕' 증세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성과중심의 문화가 잘못 정착되면서 달성하지 못할 '큰 일'보다는 성과를 금방 낼 수 있는 '만만한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당한 부(富)까지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빠뜨릴 수 없다. 부자가 되겠다는 꿈, 글로벌 기업의 야망을 키우는 배포는 이미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런데다 젊은 직원들이 '하류적' 경향까지 보이니 회사는 점점 더 무기력하고 고만고만한 '하류 조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기업체 사장들을 만나보면 "돈으로도, 인사로도 통제 안되는 것이 요즘 직원"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일류'를 목표로 객기를 부리는 '촌놈'들을 만나기 어렵다고들 입을 모은다. 최근 수년 사이 기업들이 '핵심인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던 건 바로 '하류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류화'가 걱정되지만 뒤집어 보면 '일류'를 꿈꾸는 기업이나 개인들에겐 그만큼 기회가 많은 시대가 열리는 셈이기도 하다. 직원들을 일로 흥분시킬 수 있는 경영자와 기업엔 그만큼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