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

월가 곳곳에서는 "더 이상 버냉키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가 발언할 때마다 주가가 출렁거린다는 것은 정책이나 발언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의 방향성을 분명히 정리하곤 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과 대조를 이루면서 버냉키 의장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져 가는 분위기다.

월가에서 버냉키 의장에 대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금리 정책에 대한 그의 발언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버냉키 의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국제금융회의에서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이는 지난 1일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5월 의사록에서 금리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채 "앞으로 금리 정책은 경제지표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사뭇 다른 것이다.

월가에서는 "경제지표에 따라 금리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해놓고 정작 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는 5월 고용지표 발표 직후 인플레이션 차단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문제가 있다"(마이클 맬론 코웬 앤 컴퍼니 애널리스트)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5일에는 짐 색스톤 하원의원의 질문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잘 억제되고 있다"고 답변해 투자자들을 안심시켜 놓고 "핵심 인플레이션이 억제선을 웃돌았다"(5일 발언)고 뒤집어 신뢰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버냉키 의장의 실수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4월 의회에서 "금리 인상을 잠시 쉴 수 있다"고 발언했다가 며칠 후 CNBC 앵커에게 "말의 뜻이 시장에 잘못 전달됐다"고 밝혀 시장 참가자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버냉키 의장의 능력에 의구심이 일면서 채권시장에는 이른바 '버냉키 프리미엄'이 0.1%포인트가량 형성돼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더욱이 6일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의 토머스 회니히 총재가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며 따라서 물가 오름폭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점도 입방아에 올랐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과 상충하는 주장이 지역 연준 총재의 입에서 곧바로 나온다는 것은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