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금융회의에서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미국 경제가 둔화(鈍化)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또 한번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고 있다. 경제지표를 보고 금리정책을 결정하겠다는 뉘앙스를 던져주었던 그간의 태도와는 차이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발언이 오는 2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의 금리인상에 대한 예고용이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로선 미국발 인플레 우려와 금리인상이 곧 세계경제 둔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버냉키 의장이 인플레 압력을 억제하겠다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것도 없다. 인플레가 현실화되기 전에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통화당국의 고유 임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그 배경이다. 버냉키 의장은 미국 경제의 성장둔화가 시작됐고, 인플레 압력이 인내할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고 했다. 금리정책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인플레 차단 쪽으로 무게중심을 조심스레 옮겨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 물가상승) 상태로 빠져들지 않도록 미리 대응하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 상황만을 놓고 보면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금리인상으로 인플레를 잡는데는 시차가 있는데 반해 그렇지 않아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기에는 바로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국제유가가 불안정한 추세를 보이며 급등한다고 가정하면 공급측면에서 비용상승을 가져와 상황은 더 꼬일 수도 있다.

세계경기가 둔화되면 가뜩이나 하반기 경기둔화가 전망되는 우리 경제로선 더욱 어려운 여건이 될 것이다. 때문에 당장 오늘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고민도 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문제, 물가 압력,과잉유동성 등을 생각하면 금리인상 필요성이 있지만 환율 불안, 유가의 불투명성,급속한 경기둔화 우려 등을 감안하면 운신(運身)의 폭이 결코 넓지 않다. 국내외 여건 변화를 면밀히 살펴 정책당국이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다가왔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