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는 "유사 이래 20세기 후반 한국이 겪었던 것보다 더 빨리,그리고 더 많이 변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 행운이 더해 이뤄진 것이라면,나는 한국이 산업화 이전에 벌써 미래지향적인 기업인을 가졌던 것이야말로 행운 중의 행운이라고 본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온 이들의 중심에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는 신념 아래 미래를 개척했다.

사회도 국가도 과거에 매달려 현실에 안주하기 조차 힘든 시절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50년간 삼성의 최고 사령탑으로 재임하면서 설립 또는 인수한 기업은 모두 37개에 달한다.

그 기업들은 대부분 세계 최고이거나 그 수준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삼성 경영철학'(야지마 긴지·이봉구 지음,이정환 옮김,W미디어)이라는 제목에 현학적인 선입감으로 주저함을 느꼈더라도 과감하게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평소 입이 무거운 이병철 회장과 직접 대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후,분명하지 않은 부분은 질문을 해 완성한 책이다.

그의 열정적인 경영과 '적재적소'의 인재제일 경영,일등주의,품질제일주의 등 오늘의 삼성을 굳건하게 떠받치는 경영철학이 곳곳에 묻어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생존을 넘어 선도적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사업가와 비즈니스맨을 위한 보물지도라 할 수 있다.

이병철의 위대한 점은 돈을 벌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이 돈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먼저 갈파했다는 점이다.

삼성을 통해 실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의 탄생 1세기가 지난 지금 지속가능경영의 이름으로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다.

이 책에는 이병철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의 추억도 담겨져 있다.

1935년 봄 처음 시작한 미곡정미 사업에서는 시세를 잘못 읽어 불과 1년 만에 자본금의 절반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시세의 함정에 대해 깨달았다.

1953년 10월 그는 전국의 철판 업자를 찾아 다니며 만든 제당기계를 떨리는 손으로 시동시켰다.

그러나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은 흰 설탕이 아니라 액상 밀당이었다.

기가 막혔다.

우연히 근처 철공소의 용접공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 용접공은 바로 삼성에 근무하게 됐다.

인재를 찾아나서는 경영을 벌써 50년 전에 실천한 것이다.

"세상에는 돈이 돈을 번다거나 권력으로 돈을 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돈을 벌게 해주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이다.

성현들은 일찍부터 '국가를 흥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망하게 하는 것도 역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이것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병철의 경영철학'을 조목조목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책을 덮을 때면 '실패는 자산으로,성공은 보물로' 바꾸어온 그의 경영철학을 온 몸으로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84쪽,1만3000원.

/권오용 SK기업문화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