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이다.

과연 지구촌 최대 축구 잔치인 월드컵을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드보카트호의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상대인 토고 대표팀 사정이 말이 아니다.

태극전사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정말 이런 상대에게 져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월드컵 처녀 출전국이라고는 해도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토고 대표팀은 그 동안 월드컵 보너스 문제로 진통을 앓아왔다.

이 문제로 독일 출신 오토 피스터 감독이 고국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일에 중도 사임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토고축구협회는 하루는 보너스 문제에 대해 "해결됐다"고 했다가 불과 몇 시간도 안돼 "아직도 협상 중"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믿음을 주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돈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쉽게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 보이콧' 얘기까지 흘렸던 선수들이 막상 월드컵이 개막되자 '잘해 보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은 게 다행이다.

예정된 훈련이 갑작스레 취소되는 등 팀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돼 온 것도 다 돈 때문이다.

일부는 턱없이 많은 돈을 요구한다며 선수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올리기도 했고, 일부는 감독 사퇴의 지경까지 몰고간 토고축구협회를 질타했다.

한심하게도 선수들의 훈련 거부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고 사임 이유를 밝힌 피스터 감독마저 3만 유로의 급여를 받지 못해 팀을 떠났다는 소문도 있다.

'태업'의 한 방편인지 일부 선수들이 종종 숙소 인근 바를 찾아 밤늦도록 유흥을 즐기다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 본 이들도 많다.

문화적 차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주더라도 과연 다음날 훈련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태극 전사들이 만일 그랬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토고 대표팀이 13일(이하 현지시간) 열릴 한국과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려고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바로 전날인 11일, 이들의 훈련캠프가 마련된 독일 남부 방겐에서 하루는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날 방겐에서 발로 뛴 취재진은 내.외신 50여 명. 가장 큰 관심은 뭐니뭐니해도 전 카메룬 대표팀 감독이었던 빈프리트 셰퍼의 토고 대표팀 감독 선임 건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독일 현지 언론 등 외신들은 피스터 감독 대신 셰퍼가 토고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셰퍼 감독 내정설은 이미 피스터 감독 사임 직후부터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일 기자회견에서 게르송 크와조 토고 대표팀 단장은 "피스터를 기다리겠다"며 셰퍼 감독 접촉설을 부인했다.

11일 오전 훈련 뒤 록 냐싱베 토고축구협회장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과 인터뷰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속시원히 대답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냐싱베 회장은 셰퍼 감독 내정에 대한 확인을 거절한 채 "오늘 오후에는 모든 것이 확정될 것이다.

오늘 밤에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위스 자택을 떠난 셰퍼 감독이 토고 숙소에 나타나면서 '셰퍼호' 출항은 기정 사실화 됐다.

이날 오후 4시 방겐시청에서 토고대표팀 후원사가 마련한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7시에 또 한 차례 기자회견이 잡힌 것도 셰퍼 감독 때문일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방겐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쿠사 카미루 토고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일단 한국경기는 코조비 마웨나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치를 것"이라며 "셰퍼 감독을 포함해 독일 출신 지도자 3명과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셰퍼 감독이 4시간 가까운 협상을 마치고 방겐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토고축구협회 측은 "아직 결정된 건 없다"면서 "셰퍼와는 계속 협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센터를 가득 메운 취재진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믿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보니 토고 대표팀을 둘러싼 소문은 무성하기만 했다.

하지만 토고축구협회는 이를 확인하려는 어떤 질문에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로 대답하는 기술이 있었다.

그들은 불신을 스스로 키웠다.

한 영국 기자가 자신의 질문에 메산 아톨루 대변인이 프랑스어로만 얘기를 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하자 "전날 나랑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 영어를 할 줄 알면서 왜 프랑스어로만 이야기하느냐"고 불만을 던졌다.

그런데 아톨루 대변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제는 영어로 얘기하고 싶었고, 오늘은 프랑스어로 말하고 싶다".
영국 기자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욕이라도 퍼부어주었으면 속이 후련했을 텐데 그는 잘 참아냈다.

토고 대표팀은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취재진은 세상에 이런 팀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월드컵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을 리 만무해 보인다.

한국과 첫 경기에 마웨가 코치가 지휘봉을 잡는다고 했지만 다시 피스터가 와서 벤치에 앉을 지, 아니면 셰퍼나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지킬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모든 건 그 때 가 봐야 명확해 질 것이다.

토고 대표팀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태극 전사들이 엉망진창 토고 대표팀에 톡톡히 본때를 보여주길 바란다.

월드컵이 어떤 무대인가.

(방겐<독일>=연합뉴스)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