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조촐하게 4주기를 맞이할까 합니다.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효순.미선양 사망사고 4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52)씨는 "조용히 지내고 싶다"며 현재 심정을 이같이 말했다.

심씨의 소망을 아는 듯, 요구르트 배달원 사망사고로 '시끄러웠던' 지난해와는 달리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효순.미선 위령비에서는 큰 행사 없이 조용히 4주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1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시민 공원에서 효순.미선양 추도식 및 반미연대집회를 갖은 뒤 효순.미선양의 고향인 양주시 광적면으로 추모순례를 할 예정이다.

또 미군기지문제해결 범시민대책위원회 등 30여명도 이날 오전 위령비를 방문한 뒤 오후 7시부터 의정부시 의정부역 동부광장에서 촛불 문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효순.미선양 사망사고가 한국사회에 끼쳤던 영향을 생각한다면 '조용한' 4주기 행사는 의외로 여길 만하다.

월드컵 열풍이 불었던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4강 신화'에 두 여중생의 사망사고가 묻히는가 싶더니 그 해 11월 장갑차 운전병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미군 관련 시민단체뿐 아니라 종교.여성 단체, 초.중.고등학생, 일반 시민 가릴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죄 판결에 항의하고 숨진 효순.미선 양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16대 대선과 시기가 겹치면서 항의 집회는 당시 보수성향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효순.미선양 부모집을 방문, 불평등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규정을 개정할 것을 약속할 정도로 핫 이슈로 부상했고 이후 '촛불 문화제'가 새로운 집회양식으로 자리잡게된 계기가 됐다.

또한 지난해 6월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요구르트 배달원이 미군 트럭에 치어 사망한 사고와 관련, 사고 다음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조의를 표할 정도로 효순.미선양 사망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 관련 사건사고에 대해 예전과 다르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됐다.

올해로 두 여중생 사망사고가 발생한지 4주년. 이제는 관련 기사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추모 집회에 참석했던 김모(21)씨는 "월드컵에는 열광하면서 추모 집회에 사람들이 안 모이는 것이 속상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효순.미선 촛불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효순.미선양 사망사고가 불평등한 한미관계로 인한 비극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제는 효순.미선양 사고 만큼 혹은 그보다 큰 문제인 평택미군기지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주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