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철 <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jcoh@kcta.or.kr >

"바느질 잘하는 여자는 소박 맞아도 음식 잘하는 마누라는 소박 안 맞는다"는 우리 옛 속담이나 "얼굴 예쁜 아내의 남편은 3년이 즐겁고 요리 잘하는 아내의 남편은 30년이 행복하다"는 서양 속담은 맥을 같이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아내의 요리 솜씨가 가정 행복의 요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관념의 이면에는 남편은 요리와는 무관한 존재로서 다만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들고,음식 만드는 수고에 대해 감사하는 정도로 소임을 다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조리시간이 길고 과정이 복잡한 음식이 많아 남편이 요리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고 가부장적 권위의식 탓인지 남편은 부엌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오랫동안 관습화돼 왔다.

고백컨대 필자도 결혼 이후 30년 가까이 요리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겨왔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요리를 준비하면서 아내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는 착각마저 하면서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필자가 휴일에는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도와주는 자상한 남편으로 생각했다가 제대로 된 요리는 말할 것도 없고 계란프라이나 라면 한번 끓여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를 본 듯이 놀라기도 하고 요즈음 보기 드문 '간 큰 남자'라며 실망하기도 한다.

스파게티 소스 등을 잘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는 정명훈이나 뛰어난 드레싱 만드는 솜씨를 비즈니스로 연결, 자선사업까지 하고 있는 폴 뉴먼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제는 요리 잘하는 남편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국내의 어느 결혼 정보회사가 결혼 적령기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남녀 공히 이상적인 배우자로 요리 잘하는 사람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다는 사실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세태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느냐는 자세를 가진 젊은이들이 매우 많아졌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국에 사는 조카는 퇴근하면 요리가 취미인가 싶을 정도로 앞치마를 두르고 양념을 만들거나 생선 야채 등을 다듬어 한식 양식 퓨전요리를 곧잘 만든다고 하는데,아들 녀석은 애비를 닮아서인지 요리는커녕 커피 한 잔 타보지 못한 채 입대해 부대 내에서 핀잔을 들은 일도 있다.

나이 들어서도 스스로는 아무 일도 않고 아내가 챙겨줄 때까지 기다리는 버릇이 계속되면 '왕따 남편'이 되기 십상인 시대에 남편 자립지수를 획기적으로 높이고,간 큰 남자가 대물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들이 제대하면 요리학원에라도 같이 다닐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