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양주동 선생님의 '면학의 서'라는 수필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영어를 처음 공부하면서 접하게 된 '삼인칭 단수'라는 말의 뜻을 몰라서 선생께서는 결국 읍내에까지 나가 학교를 방문해 그 뜻을 알아낸다.

새로운 것을 배운 기쁨을 느끼면서 선생께서 흥겹게 만들어낸 표현이 뒤이어 나온다.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 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최근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은 매우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자본시장관련 14개 법안을 통합해 일관된 규제체계와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서는 금융투자업을 매매업 중개업 자산운용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자산보관관리업의 6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바로 금융투자업의 대상이 되는 금융상품의 정의이다.

금융투자상품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고 있다.

"이익의 획득이나 손실의 회피,또는 위험관리를 위하여,원본손실이나 원본을 초과하는 손실,또는 추가지급의 가능성을 부담하면서 현재 또는 장래의 특정시점에 금전 등의 이전을 약정함으로써 갖게 되는 권리".이 표현을 보면 금방 느낌이 온다.

예금상품과 보험상품을 뺀 나머지 금융상품은 "우수마발이 모두 금융투자상품"이라는 정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인 대륙법 체계와 네거티브 시스템인 영미법 체계하에서 어느쪽이 더 투자금융업이 발전했는가를 보면 이는 단연코 영미법 체계 하에서다.

독일과 일본에서 직접금융시장은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

최근 그 중요도가 더해지는 투자금융업의 발전에 포지티브 시스템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은 두 시스템에 대한 절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네거티브 시스템 같은 포지티브 시스템이다.

금융투자상품의 정의를 열거하되 매우 추상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예금 보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품이 금융투자상품의 정의에 부합하면서 도입근거가 마련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날씨나 온도를 대상으로 한 장외파생상품도 얼마든지 도입이 가능한 것이다.

얼마 전 한·미 FTA의 1차협상이 마무리되고 결과가 발표됐다.

11개 분야에서 협정문이 만들어지고 금융부문은 2차협상 전까지 협상문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금융분야의 합의에서 특징적인 것은 신금융상품에 대해 내국인 대우를 하기로 합의를 한 부분이다.

또한 국경간 거래에서 소비자 보호가 중요하다는 한국측 주장에 대해 미국은 건전성 확보를 위한 감독당국의 허가가 유지되는 한에서 허용하자며 입장을 완화했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부문에 비해 태도가 매우 부드럽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국 협상팀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고 아주 반가워하고 있다.

신금융상품에 대한 내국인 대우 안을 포함한 한·미 FTA 협상 타결 후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되면 미국은 그야말로 날개를 다는 격이 된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자국 내에서 성공시킨 수많은 유가증권 파생결합증권 장외파생상품 등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올 것이고 이 모든 상품들은 내국인 대우조항과 관련해 금융투자상품의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국내법에 의해 기본적으로 다 허용이 되는 셈이다.

물론 상품을 제공하는 미국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관련해 감독을 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상당히 제고된 상태이므로 이 또한 그다지 효과적인 제어장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논의를 시작할 때 한·미 FTA문제는 제기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젠 중요한 고려대상이 돼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 논의에 한·미 FTA 협상결과가 충분히 고려돼야 하고 반대의 경우도 필요하다.

양쪽의 논의가 잘 이뤄져 최적의 협상안과 법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상임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