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수석 부서인 재정경제부 관료들의 표정이 요즘 말이 아니다.

최근 부동산 정책 수정 여부를 둘러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노선대립에서 주무부처가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까지 수뢰 혐의로 구속돼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여당으로부터는 내수부양 재정확대 등 정책요구가 쏟아지고 있는 반면 야당은 감세주장으로 재경부를 압박하고 있어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한 양상이다.

사실상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당·청 갈등 '세금' 말도 못 꺼내

최근 재경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부동산 정책 수정을 둘러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간 갈등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5·31 지방선거 직후 여당 내 경제통 의원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부동산 세금에 대한 완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작 그 부동산 세제를 만들었던 재경부는 자기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얼마 후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세제 수정 불가' 방침을 밝히자 그때서야 청와대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입장을 정리했다.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은 표류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재경부는 당초 지방선거 직후 공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발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증세 논란'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탓이다.


○여당은 재정확대,야당은 감세

5·31 지방선거 이후 서민경제에 '올인'하기로 한 여당이 무분별한 내수부양 요구를 하고 있는 것도 재경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14일 내년 예산 당·정협의회에서 공적자금 상환용 예산 3조2000억원을 내수부양과 복지예산 등으로 전용할 것을 재경부에 요구했다.

재경부는 일단 '검토해보겠다'며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공적자금 갚을 돈을 선심성 예산으로 돌려 쓴다'는 지적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야당인 한나라당은 "공적자금 회수가 예상보다 잘 돼 여유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감세를 통해 국민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실패한 경제정책을 답습하기 위해 혈세를 쏟아 넣어선 안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당의 재정확대 요구와 야당의 감세주장 사이에서 재경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이다.


○변양호 전 국장 구속에 곤혹

최근 변양호 전 금정국장의 검찰 구속은 재경부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만든 요인이다.

금정국장이란 자리는 재경부 내에서도 핵심 요직이다.

더구나 변 전 국장은 '장관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재경부에선 인정받던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수뢰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자 재경부 관료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혐의 사실의 진실 여부를 떠나 재경부의 '대표 선수'였던 변 전 국장이 구속됐다는 것 자체가 재경부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가뜩이나 재경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변 전 국장 사건까지 터져 정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