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열린우리당의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난닝구와 백바지로 편을 갈랐던 그들이지만 선거 참패 이후의 분란은 국민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여당은 진정 저런 모습밖엔 보여줄 것이 없는 사분오열의 정당이었던가? 지금에 와서야 모두의 후회막급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오월동주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념가들은 세력이 부족했기에 기회주의자들이 필요했고 기회주의자들은 운동가들이 쟁취한 권력에 무임 승차하고자 했던 것이다.

선거에 대패하면서 연일 기회주의자들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은 불변의 정치 공식이 예고했던 그대로다.

그것이 더욱 가관이다.

열린우리당이라는 이름조차 일찌감치 명함에서 지워버렸던 그들이지만 때늦은 목소리를 높이는 자칭 시장경제파가 속출하고 있다.

의원총회에서도 그렇고 초선의원 모임에서도 모두가 난파선에서의 탈출을 준비하느라 소동이다.

어떤 자는 실용주의를 말하고 또 어떤 자는 극적인 회개 변심을 촉구하기도 한다.

"개혁의 높은 언덕에서 이제는 시장 바닥으로 내려가자"는 우국충정의 레토릭이 울려 퍼지고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없는데 집권하면 무엇하나"며 가슴을 치는 탄식의 소리도 흘러나온다.

'때는 이 때다'며 돌연한 나라 걱정에 잠 못이룬 얼굴을 꾸미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장하기까지 할 정도다.

"몇몇이 쑥덕거려 나라 뒤집을 정책을 결정해왔다"며 지도부를 공격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떨며 울리고 "누구든지 여당의 지도자가 되려면 시장주의를 충실히 따라야 된다"는 부분에서는 서릿발이 내린다.

참 재미있다.

세상 인심은 노무현 대통령 말마따나 조변석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의 기회주의자들이 오늘의 민심을 들먹이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렇게 변절자 혹은 투항자가 되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은 양지를 찾아 음지에서 암약해온 인물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언제나 알리바이를 둘러대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반(反)시장주의 사학법이 숫자를 내세워 강행 통과될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지, 턱 없는 부동산 세법이 추진될 때 어디에 있었는지, 출자규제니 금산법이니 하는 온갖 종류의 반기업·반시장 법률들이 강행처리될 때 무엇을 했는지, 무모한 대북 저자세 외교 및 우방과 등돌리기 정책들이 쏟아질 때, 대통령이 양극화와 증세의 깃발을 들고 뛸 때, 국가보안법 논쟁이 불거졌을 때, 청와대 행정 수준이 학예회같다는 비판이 쏟아질 때, 이러다간 기어이 3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국민들의 걱정이 쌓여갈 때, 운동가들이 북한을 돈들여 초청해 광주에서 친북반미 캠페인을 벌였던 지난 주말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먼저 대답해야 한다.

스스로의 말마따나 무능한 386들이 깃발을 들고 뛸 때 그들의 충직한 하수인 노릇만 한 것인지, 방패막이 노릇은 또 어땠는지, 좌파 이념을 적절히 은폐해주는 당내 액세서리요 바람잡이 역할에 충실했던 것인지, 국회에서는 또 그것이 어떤 법률이든 386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시키는대로 손을 번쩍번쩍 들어 찬성 정족수나 채워주면서 또 다른 알리바이를 입증하는데 얼마나 열심이었던지도 먼저 밝혀두는 것이 좋겠다.

바로 그 때문에 정부에서 장·차관까지 지내고 대기업 CEO까지 지낸 분들이 젊은 이념가들로부터 숨길 것도 없는 모멸을 받아왔던 것이다.

세상은 이미 왕조적 관료제도와는 거리가 한참 먼 현대 민주주의 체제다.

사상과 주장을 따라 정당 지형을 짜고 그것으로 선택받는 정권 교체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을 테다.

지금 그들이 졸지에 시장경제주의자가 되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부디 난파선 탈출의 명분을 찾아 새삼 호들갑을 떨지 말기를 바란다.

여론을 호도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것은 오히려 그대들이다.

jkj@hankyung.com